아듀 2005 문화계 - 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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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문을 연 지 단 44일(휴관일 제외) 만에 100만 명 관람객.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세운 신화는 올 문화유산 분야가 올린 가장 값진 열매다. 10월 28일 서울 용산에서 개관한 새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은 온 국민을 '박물관 나들이 열풍'으로 몰아갔다. 세계에서 여섯째 안에 드는 건물 규모와 수장품 내용을 직접 본 시민들은 광복 60년 만에 첫 독립 건물을 세우게 된 감회에 젖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시대 개막과 함께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는 국립고궁박물관이 문패를 걸었다. 다소 초라해보이던 궁중유물전시관이 조선 왕실문화를 제대로 소개하는 전문박물관으로 제 모습을 찾았다. 2005년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갈무리할 수 있는 건물 뼈대가 제자리를 잡는 원년이란 기록을 남겼다.

10월 20일 일본에서 귀한 손님이 돌아왔다. 100년 만의 귀향이었다. 러.일 전쟁 때 당시 일본군이 약탈해갔던 '북관대첩비'의 반환은 올해 문화유산계가 손꼽는 극적 드라마다. 그동안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던 '북관대첩비'는 새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전에서 관람객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유물로 해묵은 세월의 한을 풀었다.

2005년은 유난히 문화재청과 관련한 사회 여론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그 주역이자 원동력이란 소리가 나왔다. 문화재청 조직 확대, 각종 규제 완화, 문화재 분야에 관한 국민의 관심 고취 등 긍정적 평가가 있다. 보안 때문에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던 서울성곽(사적 10호)의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길 개방은 유청장의 스타일을 보여준 대표적 예다. 반면 부정적 시각도 있다. 올해 초 광화문 현판 교체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유 청장은 그 수습 과정에서 현충사를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과 같은 곳'이라 했다가 사과를 해야 했다.

감사원이 남대문(숭례문)이 국보 1호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내놓은 것도 올해 문화유산 분야의 사건이다. 국보 1호 교체(재지정) 논란은 문화재위원회 국보지정분과위원회가 당분간 국보 1호를 지금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다.

발굴로 보면 2005년은 풍성한 수확의 해였다. 신석기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게 한 경남 창녕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과 송현동 6.7호 고분군, 청동기시대 문화상을 뚜렷하게 보여준 경북 안동 저전리 유적 등 발굴과 관련한 희소식이 이어졌다.

이런 발굴의 이면에는 유적 훼손과 관련한 문제가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개념을'문화경관'으로 넓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92년 세계유산위원회가 '문화경관' 개념을 도입하고 이에 따른 실무지침서를 개정하면서 세계는 포괄적인'문화경관'보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유산의 보호와 관리는 주민의 삶이 중심이 되고 주역이 되는 '살아있는 유산'개념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유산이 아니라'문화경관'으로 나아가는 구체적 방법 논의가 2006년 한국 문화유산계의 숙제로 넘겨졌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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