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붉은 신바람이 그립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우리는 보았다. 투명한 초여름 햇빛이 도시의 보도로 소낙비처럼 내리던 날.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온 낯선 한국인의 얼굴들을 보았다. 그것은 힘없이 고개를 숙인 어제의 우리 얼굴이 아니었다.

권력자의 오만한 얼굴도, 억눌린 자의 이지러진 얼굴도 아니었다.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저마다 깃발처럼 나부끼던 '붉은 악마'의 신선한 얼굴들-. 언제 우리가 저렇게 당당하고 행복하게 웃어본 적이 있었는가.

웃는 사람이 있으면 우는 사람이 있고, 외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침묵하는 자가 있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나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이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6월의 축제, 그 역동적인 세계의 마당 속에서는 분명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은 하나였다.

그렇다. 바로 일년 전 한일 월드컵 대회의 일이다. 그러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며 같은 장단에 맞춰 손뼉을 치던 광장의 군중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골을 터뜨릴 때마다 양 볼에 흐르던 순수한 감동의 눈물은 어느 틈에 다 말라버렸는가. 우리를 갈라놓고 주눅들게 하고 피를 흘리게 했던 '레드 콤플렉스'의 가위눌림에서 벗어난 저 눈부신 심홍색 빛깔, 녹의홍상같이 즐겁던 축제의 그 의상은 어느새 다 바래버렸는가.

천의 이유, 만의 원인이 있겠지만 서울올림픽 때처럼 새로 태어난 한국 문화가 정치.경제의 낡은 코드 속에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외국잡지가 소개한 붉은 악마의 논평 기사를 읽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투표일 전날 어느 신문의 논평은 좌익 진보 정당에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 월드컵 응원의 붉은 군중을 인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붉게 물들어 있다' 로 시작되는 그 논평은 '좌익 진보파가 서울 시장이나 대통령이 되는 날도 멀지 않다' 고 내다보면서 '붉은 악마가 보여 준 젊은 세대의 밝은 열정은 수구정치 수구언론에 오염된 대한민국의 희망' 이라고 쓴 대목을 여과 없이 인용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붉은 색을 전연 다른 시각에서 풀이한 어느 경제연구소의 글을 나란히 소개하고 있다. 붉은 악마의 'RED'는 한국인의 국민성인 끈기를 뜻하는 Resilient, 열정을 의미하는 "Enthusiastic', 그리고 역동성을 상징하는 Dynamic의 두음자라는 문자풀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의 지식경제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휴먼 웨어'의 귀중한 요소로 이 'RED'를 살리면 한국 경제를 영원히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모든 현상을 정치적 이념으로,혹은 경제적 성장으로만 풀이해왔다. 그래서 우리의 눈빛은 항상 핏발이 서 있거나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비뚤어져 있었다.

권력이나 돈은 나눌수록 적어지고 약해진다. 반대로 문화적 감동은 나눌수록 커지고 풍부해진다. 편안한 자기 집 TV를 놔두고 새벽부터 거리의 전광판 주변에 모여 든 붉은 악마의 행동은 정치나 경제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집안에서 혼자 TV중계를 보았더라면 결코 골인 장면을 보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무솔리니의 검은 셔츠처럼 정치적 이념을 나타내는 제복이었다면, 혹은 어느 의상업소의 광고 선전이었다면 천만 벌의 붉은 티셔츠가 그렇게 팔려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자기 발견은, 그리고 신장대를 잡은 것 같은 낯선 충격과 자생적 결집력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밝힌 '욕망과 이성'의 '라스트 맨'을 뛰어넘는 티모스(기개)의 힘이었을 것이다. 남과 대등해지려는 평등 원망과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우월 원망이 하나로 녹아 흐르는 한국 특유의 그 신바람 문화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 같은 힘을 한번도 정치풍토나 경제시장 속에 제대로 살려 본 적이 없었다. 때로는 판소리로,때로는 춤사위로 그 명맥을 겨우 이어가다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세계의 잔치를 맞아 간헐적으로 폭발했다.

그래서 우리는 '붉은 악마'의 손뼉소리에서 살풀이의 장단을 듣고 4강 신화를 만든 우리 축구팀 선수들에서 작두 위에서 춤추는 무녀의 춤사위를 보기도 한다.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권집단의 혼란과 보혁(保革)의 이념적인 편가르기와 갈등, 그리고 세대 간 단절의 깊은 구렁 앞에서 우리에게 지금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아마도 일년 전 그때와 같은 공동체의 감동일 것이다.

16강이 8강이 되고, 8강이 4강이 되고, 그것이 다시 정상의 결승으로 향하는 한 단계, 한 단계의 욕망, 그 선명한 비전을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 뒤풀이일 것이다.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6월에 대한 두 역사적 이미지 속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6.25 전쟁'이고, 하나는 월드컵 4강의 '축제'다. 전쟁을 축제문화로, 축제문화를 새로운 희망의 정치와 행복한 경제로 만들어가는 꿈이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한 그 별은 그렇게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는 6월의 축제를 통해서 배웠다. 천상의 힘없는 날갯짓을 이제 정치.경제의 튼튼한 대지의 보행으로 옮기고 실천하는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