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유창혁, 통한의 패착을 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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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8강전 하이라이트>
○ . 유창혁 9단 ● . 이창호 9단

<장면1>=112로 짚자 113으로 응수한다. 여기서 유창혁 9단에게 결단의 순간이 도래했다. 이미 초읽기라 시간은 없다. 그러나 결정은 내려야 한다. A로 나갈 것이냐, B로 물러설 것이냐. 유리하다면 A로 물러서야 하고 형세가 만만치 않다면 B로 전진해야 한다.

국면은 아슬아슬하다고 한다. 흑이 덤을 낼 수 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영구.윤준상.김지석 등 검토실에 가득 모인 젊은 강자들은 '미세하지만 백이 좋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러나 바둑판 앞에 앉은 유창혁 9단은 이 사실을 모른다. 짧은 시간 동안 계산을 해보려 몸부림해 봤으나 아슬아슬하다는 정도일 뿐 이긴다는 확신이 없다. 하나, 둘, 셋…. 계시원의 초읽는 소리는 지옥사자처럼 갈 길을 재촉하는데 이창호 9단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장면2>=유창혁 9단은 비장한 심정으로 진격을 결정했다. 문득 물러서면 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리하여 승부사답게 114로 전진해 버렸다. 그러나 이 수는 무리수였고 패착이었다.

이창호 9단은 115, 117로 흑을 차단한다. 118로 연결하자 잠시 뜸을 들이더니 119로 살그머니 붙여 온다. 순간 유창혁 9단은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사로잡힌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스스로 함정에 기어들어왔음을 깨닫는다.

<참고도>=백1로 차단하면 흑2, 4로 간단히 망해 버린다.

119로 중앙이 뚫리면서 이 바둑은 흑이 이겼다. 만약에 백114로 물러섰으면 어찌 되었을까. 이창호 9단은 "흑이 1집반쯤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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