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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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준결승 1국>
○·박정환 9단 ●·탕웨이싱 9단

제12보(138~152)= 138, 140의 궁여지책으로 수상전의 승리는 확인했으나 141로 백 2점이 떨어져나간다. 뼈가 저리다. 단순하게 2점을 뜯긴 결과가 아니다. 좌하일대의 축성은 백의 성지나 다름없는 곳. 절대로 지켜야 할 상징이 무너지고 뚫린 것이다.

 탄샤오는 143, 145로 꼼꼼하게 찔러 ‘수상전 1수부족’을 확인한 뒤 상변 147로 물러선다. 이건, ‘이겼습니다!’라는 선포의 느낌이 짙다.

 좌하일대를 굽어보는 박정환의 눈길은 승자의 것이 아니다. 전장(戰場)을 수습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애써 일군 논을 흙으로 메우는 농부의 심정이랄까.

 전란의 와중에 우하 쪽에 남아있던 ‘참고도’ 백1 이하로 넘어가는 기분 좋은 끝내기도 사라졌다. 백5로 넘는 순간 흑6으로 따내면 백 대마의 공배가 먼저 메워져 수상전의 승패가 뒤집힐 것이기 때문이다.

 148, 150은 전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인데 어쩐지 무기력해 보인다. 그래도 어떻게 밟은 세계대회 4강고지인데 이대로 무릎을 꿇긴 싫다. 마음을 다잡는다. 그 옛날, 아득한 절벽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백의종군의 이순신.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상소는 필승의 의지가 아니고 필사의 각오겠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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