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의 가요는 "현실도피"|김창남씨의「한국유행가 성격…」서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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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그는 개화기부터 일제식민 지배에 이르는 시기가 오늘날의 문학현상을 해명할 수 있는 열쇠를 가장 많이 지닌 시기로 보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예부터 노래를 즐기는 민족으로 그들에 의해 창조되고 향유돼온 노래가 민요다. 민요는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민중문화 양식이다.
그러나 개항과 함께 밀려들어온 외래문화의 충격으로 전통적인 문화체계는 급속히 와해됐다.
외래적인 문화양식중 중요한 것이 기독교와 함께 퍼지기 시작한 찬송가였다. 찬송가의 형태적 충격이 개화를 주장하는 애국계몽운동의 근대적 감각과 결합해 탄생한 것이 최초의 참가 형태인 애국·독립가류였다.
애국·독립가류의 전통은 1904년을 전후해 창가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 학교의 교과과정으로 사용되면서 초기 창가기를 맞는다. 초기 창가중 특징적인 것은 최남선에 의해 이뤄진 계몽지 창가였다.
그러나 19l0년 한일합방은 참가의 발전과정을 결정적으로 왜곡시켰다. 주요 교육수단이었던 창가를 억압하고 그들의 교육목적에 맞는 새로운 창가집을 보급시켰다. 이들 관인 교육창가들은 계몽적 의식이나 애국·독립의지를 거세시키고 현실의 신비화, 자연의 찬미, 소시민적 일상의 정서 등 서정성을 그 특질로 히면서 3·l운동 후 유행 창가기를 맞는다.
그 후 1926년 유행 창가중 최초로 레코드화 된『사의 찬미』의 상업적 성공과 함께 일본레코드 자본이 속속 상륙, 당시의 유행 창가들을 음반화하면서 한국의 유행가 시대는 막을 올리게 됐다.
당시 유행가의 수사기법을 분석한 김씨는 우선「나그네 의식」을 예로 들었다. 『타향살이』『방랑자의 노래』『이원애곡』『국경의 부두』『사막의 한』등 수많은 유행가들이 망향·방랑의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강남제비』『애수의 소야곡』『외로운 가로등』같이 이별의 비애와 절망을 동반한 애정류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
1939년 일제의 시민지배가 극에 달했던 참담한 시대에 무엇을 위한 희망이며 감격인지 모를『감격시대』가 나왔다. 현실에 아랑곳 하지 않은 엉뚱한 현실예찬은『바다의 교향시』『청춘의 꿈』『꽃마차』에서도 계속됐다. 『왕서방연서』『요핑계 조핑계』『대한팔경』『처녀총각』『삼천리강산 에라좋구나』등에선 향락과 퇴폐풍조가 지배하고 있다.
김씨는 당시의 유행가들이 『망국의 설움을 안고 우리 방탕하는 민족의 슬픔을 하소연하는 것이라거나 애향심과 조국애의 표현』이라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노래들이 가져온 결과는「현실로부터의 도피」고「무력감의 조장」이며「소시민적 안일의 추구」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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