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참여 성향 공지영, 내밀한 문체 전경린…연애소설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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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지영 & 전경린.

당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둘이 잇따라 연애소설을 들고 나왔다. 물론 두 소설의 기획 의도나 작가 스타일은 판이하다. 하지만 둘의 무게감을 고려한다면 이후 판도는 자못 궁금하다.

공통점도 여럿이다. 우선 둘은 동년배다. 전경린은 1962년 11월26일생, 공지영은 1963년 1월31일생이니 겨우 두 달 차이다. 등단은 공지영(88년)이 전경린(95년) 보다 8년 이르다. 둘 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 비근한 예만 살펴도 지난해 8월 발표한 전경린의 '황진이'는 최근까지 20만 부 가까이 팔렸고, 올 4월 출간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10개월째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둘의 작품 세계는 완연히 다르다. 공지영은 후일담 문학의 전통에서 사회 참여적인 작품을 주로 발표했고 전경린은 섬세하고 내밀한 문체로 여성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발설했다.

두 소설의 사랑은 사회 관습을 어긴다. 공지영의 사랑은 한국과 일본의 국경을 넘어서고, 전경린의 사랑은 불륜에서 시작한다. 하여 두 작가 모두 "단순한 연애담으로 읽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소담)과 전경린의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이룸)을 비교해 읽었다.

공 지 영

# 한국 여자와 일본 남자

공지영의 이번 작품은 화젯거리가 많다. 우선 치밀한 기획의 산물이다. 한국과 일본의 작가가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주인공의 시점에서 서술한다. 앞서 공지영만 언급했지만 사실 소설은 두 권이다. 하나는 공지영이 여성의 입장에서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쓰지 히토나리가 남자의 시각으로 적은 것이다. 소설 제목은 같다.

두 작가가 처음 만난 건 1년 전이다. 둘은 며칠씩 머리를 맞댔고, 1000통이 넘는 e-메일이 오고 갔다. 하여 줄거리가 엮였다. 7년 전 한국의 홍이는 일본 대학에 유학 갔다가 가난한 일본인 남학생 준고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은 헤어지고 세월이 흘러 소설가가 된 준고가 서울을 방문한다.

두 작가는 상대편 주인공의 캐릭터를 상대 작가에게서 찾았다. 즉 쓰지 히토나리가 묘사하는 홍이에겐 일정 정도 공지영의 성격이 묻어있다. '고집이 센 것 같지만 순수하고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같은 대목에서 작가 공지영이 떠오르는 건 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쓰지 히토나리의 성격을 공지영 소설에서 짐작할 수도 있다.

작가는 "후일담 문학의 꼬리표를 뗀 첫 소설"이라고 불렀다. 한일 과거사 문제를 최대한 피한 서사는 사실 예전 공지영에게선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다시 보니 문체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작가 개인에게도 뜻깊은 소설이다.

전 경 린

# 불륜, 사랑 그리고 삶

전경린 식의 사랑은 위태위태하다. 그의 사랑은 늘 제 한 몸 소진하고, 늘 제도권 너머에서 서성거린다. 사랑 다음의 자리엔 파멸과도 같은 아픔이 늘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도 불륜이고, 아픔이 크다. 그러나 예전처럼 붙들리지만은 않는다. 주인공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저 깊은 상처에서 허우적대지만, 소설 말미 분위기는 외려 밝다. 꿈틀거리는 화해의 몸짓에서 사랑 보다는 삶을 말하려 한 작가의 의중이 읽힌다.

눈 밑에 푸른 점이 있는 주인공 혜규. 첫사랑 인채와 결혼하기 직전 사촌 예경의 방해로 결혼은 취소되고, 자살 기도에 실패한 혜규는 혼자 상경한다. 눈 밑 푸른 점을 뺀 뒤인 혜규는 서울에서 유부남 형주와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이 예전 전경린 식의 사랑과 다르다. 모든 것 죄다 거는 사랑이 아니다. '가족으로부터 내 삶을 분가하고 싶다'는 형주와 같은 방식의 사랑이다.

전경린의 매력은 역시 감수성이다. 사랑의 방식은 달라졌지만 밀도 높은 문장은 여전하다. '구멍난 자루에서 곡식이 흐르듯' '바닥을 믿지 않는 노인처럼 신중한 걸음걸이' '뱃속은 겨울 과일처럼 차가웠다' 등에서 여러 차례 밑줄을 그었다. '황진이' 이후 16개월 만에 나타난 작가가 덜컥 내놓은 전작 장편. 공들이고 고민한 흔적, 곳곳에 역력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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