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플라톤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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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누가 나라를 통치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정치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되어있다.
질문은 어떤 사람들이 통치해야 국가의 정의가 실현된 것인가를 묻는 문제이므로 결국은 『어떻게 하면 사회정의가 실현될 것인가』라는 질문과 성격을 같이한다.
이러한 질문에는 여러가지 대답이 있을수 있겠으나 서양철학사에 나타난 입장들을 간추려 보면 대체로 세가지로 분류해볼수 있다. 첫째는 「플라톤」이 주장하는 바와같이 탁윌한 몇몇 엘리트들이 힘을 합쳐 통치해야 한다는 소위 정예제(aristocracy)이고 둘째는 「홉즈」(Thomas Hobbes)처럼 국민의 권리를 위탁받은 어느 한 사람이 통치해야 한다는 군주제(monarchy), 그리고 세째로는 「로크」(John Locke)가 역설한바와 같이 국민각자가 자기 스스로를 통치해야 한다는 민주제(democracy)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혹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제도자체가 아니라 통치자의 자질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정작 권력을 쥔 사람들이 사리사욕을 일삼고 나라 전체의 복지보다는 자기자신의 이익을 먼저 도모할때 사회정의는 결코 실현될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떠한 제도를 받아들이더라도 실제로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소수의 정예들이므로 이 지도자들의 자질은 항상 정치철학자들의 핵심적 관심이 되어 온것이다.
비록 민주제의 실시하더라도 모든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정책결정에 참여할수는 없는 형편이므로 이들의 의사를 대변할수 있는 대표들의 자질이 문제가 되고 군주제의 경우에도 군주가 신이 아닌 이상 그를 가까이서 보좌할 귀족들의 역량에 모든 것이 달려있는 샘이다. 이런 뜻으로 「플라톤」이 그의 『국가론(Politeia)』에서 말하는 통치자의 자질은 정의사회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큰 관심거리가 되어왔다.
「플라톤」의 『정예제』는 「가장 바람직한 사람들(ariston)에 의한 통치(kratos)」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가장 바람직한 사람들이 과연 어떠한 사람들인지가 밝혀져있지 않는한 아직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정치철학의 거의 대부분도 한마디로 통치자의 자질이 무엇인가를 규묭하는데 바쳐진다.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플라톤」은 우선 국가가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한 개인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서 그에 의하면 개인과 국가는 그 규모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구조나 기능에는 서로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가 실현된 이상적인 국가는 심신이 잘 조화된 이상적인 인간과 닯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된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인간이란 어떠한 인간인가.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되어있고 영혼(Psyche)은 이성적인 부분, 기개적인 부분및 타욕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 부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각기 제기능을 십분 발휘할때 이상적인 인간이 된다.
마찬가지로 한 국가도 이성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정예집단과 기개적부분의 임무를 맡는 재사집단및 정욕적부분과 흡사한 노동자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집단들이 각기 자기의 직분에만 충실할때 한 국가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농공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업에 전념하여 국가의 재력을 증진시키도록 애쓰고 전사들은 국토의 방위와 치안에 몰두하여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며 용지자는 이러한 일들이 제대로 수행될수 있도록 통제하고 국가의 나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 국가를 통치할수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자가 노동에만 몰두한다든지 국토방위의 임무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없는 자가 통치를 떠맡으면 정욕이나 의지력에 의해 이성이 압도당한 개인처럼 균형이 깨져서 국가에는 걷잠을수 없는 혼란이 야기될수밖에 없다는 것이 「플라톤」의 견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통치자는 어떤 사림들인가. 「플라톤」에 의하면 그들은 일찌기 젊은시절에 선발된 자들로서 오랜 수련과정을 거쳐 세계의 법칙과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여 마침내 보의「이데아」를 직관할수 있게된 철인이어야 한다. 그는 『철인이 왕이 되든가 왕이 철인이 되지 않으면 백성들의 불행은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인격과 지혜를 구비한 철인이 통치해야 한 나라의 정의가 구현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결론은 물론 증명되지 않는 전제, 즉 국가가 개인의 연장이라는 점과 국가의 구성원을 너무 유토피아적으로 도식화한데 몇가지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정의관이 여전히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는 한 나라의 운명이 절대로 소인배들에게 맡겨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데 있는 것이다.
『대학』의 끝머리에도 밝혀져 있듯이 『나라의 어른이 되어 재물쓰기에 힘쓰는 사람은 반드시 소인인 까닭에 그러하니 소인으로 하여금 국가를 다스리게하면 재해가 아울러 이른다(외국가이무재용길, 심자소인, 피위선지소인지사위국가, 번해병지)』는 것이 또한 사실이라면 축재에 여념이 없는 무리들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정의의 구현을 바라는 것은 한낱 공허한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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