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되는 일본과 독일의 유엔 연설…일 "아시아인에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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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가해국인 일본과 독일이 대비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요시카와 모토히데(吉川元偉) 유엔 주재 일본대사는 침략 전쟁에 대한 사죄 없이 모호하게 반성의 뜻을 나타내는데 그쳤다. 반면 하랄트 브라운 유엔 주재 독일대사는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책임을 거론하며 용서를 구했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과거사 발언처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요시카와 대사는 이날 연설에서 “일본이 최근 70년간 전쟁에 대한 깊은 후회(deep remorse)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인권·법의 지배를 존중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지난달 29일 미 상·하원 합동연설 때 사용한 ‘deep remorse’란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며 영어로 연설했다.

요시카와는 또 “우리(일본)의 행위가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줬다”며 “우리는 거기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아베가 미 의원들 앞에서 “전후 일본은 전쟁에 대한 깊은 후회를 명심하고 길을 걸어왔다”며 “아시아 국가 국민들에게 고통을 줬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려선 안 된다”고 말한 것과 거의 흡사하다. 두 사람 모두 ‘침략’과 ‘사죄’ 등의 표현은 전혀 쓰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랄트 대사는 “나치 독일에 의해 촉발된 전쟁은 이웃국가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줬다. 국가사회주의 정권의 범죄는 지금까지 우리를 전율하게 한다”며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등에 대한 독일의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했다.

그는 또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의 ‘기억에는 유효기한이 없다’는 발언을 언급한 뒤 “우리 자신을 우리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독일은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2일 “우리 독일인들은 사려 깊게, 민감하게 그리고 능숙하게 나치 시대 우리가 자행한 일들을 해결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다음날 나치의 강제 집단 수용소인 바이에른주 다하우 수용소를 찾아 “나치와 생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혀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다”며 “우리는 희생자들을 위해, 또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이를 기억하겠다”며 과거사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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