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 쇼크"로 냉가슴 앓는 민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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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내혁 전 대표의원의 치부에 대한 문형태씨의 투서사건 내막이 경찰의 집중수사로 조금씩 밝혀지자 12대 총선거를 앞둔 민정당은 고통스럽게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민정당은 검찰당국이 가급적 단 시일 안에 수사를 종결지어 사건의 경위가 정-문씨 두 사람의 개인적 감정싸움, 또는 이해다툼으로 국민들에게 납득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입장이다.
총선거를 앞둔 민정당으로선 이 사건으로 인한 정씨 개인의 행·불행을 논할 만큼 여유가 없다. 어떻게 하면 당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제5공화국 출범 때 내건 「청렴정치」가 구두 선이 아니었음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다.
당의 손실과 고통을 빨리 끝내는 방안으로 많은 의원들에 의해 정씨의 국회의원직 사퇴여부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민정당의원들의 견해는 대체로 세갈래. 첫번째는 투서 한장에 정치인의 진퇴가 판가름나는 풍토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씨가 끝까지 의원직을 지켜 투서자의 비열한 반도덕성을 냉소하는 전통을 세워야한다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선출된 의원직에 대해 제3자가 왈가왈부할 성질은 아니나 사건이 당과 사회에 준 충격을 고려할 때 정씨 자신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애초 사퇴를 결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세번째는 사건의 진위는 사직당국이 가리더라도 거액의 재산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이로 인한 당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당이 의원직 사퇴를 적극 종용하거나 치부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투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초기단계에서는 첫번째 의견이 우세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두번째, 세 번째 쪽으로 대세가 옮겨가는 형세다.
그러나 아직도 책임있는 당직자들은 속마음이야 어떻든 정씨의 의원직 사과문제는 당이 개입할 성질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종찬 총무는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직은 당직과는 다르지 않느냐』며 『여론을 의식해 극에서 극으로 통하는 조치를 취할 수는 없으며 더 이상 에스컬레이트 시키지 않는 것이 정도』라고 말했다.
또 김용태 대변인은 『정치인이 타의에 의해 당직을 내놓고 신문에 얻어맞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느냐』며 『그런 판에 공당이 달아오른 여론에 영합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또 걸핏하면 선출된 의원직을 사퇴시키는 것은 더 큰 불행을 자초할 것』이라고 설명.
공식적으로 민정당은 아직은 총재가 대표위원을 경질한 것으로 정치적 조치를 끝낸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당국이 정씨를 형사입건 한다든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적어도 민정당은 스스로 정씨에게 다시 한번 타격을 주어 『의리 없다』는 소리를 듣고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의원들의 여론은 당직자들의 생각과 상당히 차이가 있으며 정씨의 거취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많은 의원들이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 정씨와 문씨의 정치싸움이 국민들의 정치부신을 가중시키고 나아가 국회의원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을 뿐 아니라 차기총선에서 감표요인으로 작용하리란 판단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정씨 자신이 빨리 용퇴를 결심해 국민의 정치·정치인 일반에 대한 배신감을 덜어주고 정치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당과 본인을 위해 유리하며 결국 그렇게 되리라 추측하고 있다. 어차피 국회의원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에는 이미 선을 넘었다는 생각들이다. 투서의 내용을 몰라 처음엔 함구하고 있던 사람들이 점점 그런 말을 하고있다.
그만한 공직생활을 한 정씨가 기10억 정도의 재산을 가졌다면 시비 거리가 안된다는게 국회의원들의 평균적 감각이다.
그러나 사업을 한 것도 아니고 공직생활만 한 사람이 확인된 부동산만 1백 억대가 넘는다면 원천적으로 얘기가 안 된다는 지적이고 이점이 의원들의 동정을 못 받게된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대표위원 사임 후 과천의 자택에서 외부와 접촉을 끊고 있는 정씨는 이 문제를 놓고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그가 자신으로 인해 민정당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동료의원에게 누가 가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한다고 전했다. 그런 면만 생각하면 당장 의원직을 내던져 도의적 책임을 질 기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입장이 견디기 어렵다고 해서 의원직을 내놓는 것은 선거구민에 대한 불충이며 투서자인 문씨의 모함을 인정하는 골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가 결심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민정당과 그 자신은 점점 더 어려운 선택의 길로 몰려가는 느낌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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