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 언니와 맞붙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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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프로 시대에 고등학생 선수가 우승후보 팀에서 포인트 가드로 뛴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저런 선수를 보게 되어 기쁘군요."

강현숙(50) 농구협회 이사는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가 시작된 20일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의 경기를 꼼짝 않고 지켜봤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강 이사의 눈은 선일여고 졸업 예정인 우리은행의 포인트 가드 이경은(18.1m76㎝.사진)에게 고정됐다. 강 이사는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끈 여자대표팀 부동의 포인트 가드였다.

이경은은 프로 데뷔전인 이 경기에서 30분 동안 뛰었다. 3득점.3어시스트.2리바운드. 3점슛을 5개나 던졌다. 성공률은 낮았지만 하늘 같은 선배들과 뛰면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기회가 오면 주저 없이 슛을 던졌다. 실책은 하나도 없었다. 수비수의 동작을 교묘하게 빼앗는 데다 패스가 정확했다.

이경은은 전주원(33.신한은행).김지윤(29.금호생명) 등 노장 선수들이 장기 집권하는 가운데 혜성처럼 등장한 유망주. 고교 졸업반 선수가 곧바로 성인팀 주전 가드로 뛰기는 어렵다.

김지윤이 마산여고 졸업반 시절 93~94 농구대잔치에서 SKC 소속으로 뛴 적이 있다.

강 이사는 경기가 끝난 후 이경은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제2의 전주원'이라는 별명을 듣자 "글쎄요…"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이경은은 올해 고교 대회에서 경기당 14.3득점.7.3리바운드.3.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지난달 9일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금호생명에 지명됐다가 국가대표 포워드 이종애와 맞트레이드됐다. 우리은행 박명수 감독은 "앞으로 10년 동안 가드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번 겨울 리그에서 출전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하루라도 빨리 팀의 리더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이경은은 22일 신한은행과의 춘천 홈경기에서 전주원과 대결한다. 전주원은 이경은의 선일여고 대선배다. 신인의 각오는 당돌했다.

"주원 언니랑 한번 붙어 보고 싶었어요. 이왕 하는 거 이길 거예요."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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