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만남 불·소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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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테랑」프랑스대통령과 「체르넨코」소련최고간부회의의장간의 불소정상회담은 타협점 없는 평행선 위에서 각자의 종래 입장만을 독백하는데 그친 「귀머거리」의 만남이었다.
프랑스대통령으로선 5년만에 처음인 지난 20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미테랑」대통령은 3일간의 공식방문 일정동안 유럽배치 핵감축회담 재개, 아프가니스탄문제, 폴란드사태, 「사하로프」박사 등과 관련한 인권문제 등에 관해 프랑스정부의 기본입장을 밝히고 소련측의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했으나 소련측은 지금까지의 입장에서 조금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체르넨코」서기장은 공식만찬 연설과 회담을 통해 국제긴장의 책임, 특히 유럽배치 핵감축회담 중단의 책임이 모두 미국에 있다고 거듭 비난하고 회담재개를 원한다는 미국측의 명백하고 현실적인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달 2일부터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 소련의 반체제인사이며 노벨 평화상수상자인 「사하로프」박사문제에 대해 소련측은 서방측의 선전책동이라고 비난하고 그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일축했다.
「체르넨코」서기장은 소련이 민주주의의 완성과 개인의 자유신장·인권보장을 위해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룩해 지난 3세대동안 소련에선 실업을 모르고 지낸다고 프랑스의 심각한 실업문제를 빗대어 꼬집었다.
이번 정상회담의 소련측 대변인인 「자미아틴」공산당중앙위 국제정보책임자는 불소정상회담에서 프랑스의 국내문제인 실업문제를 논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하로프」문제도 거론할 수 없는 소련의 내정문제라고 2백여 내외보도진 앞에서 말하는등 프랑스측에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물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문제에 대해 소련측은 프랑스가 차드사태에 개입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받아 넘겼다.
엘리제궁의 「미테랑」대통령측근도 그의 방소가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안드로포프」 전서기장의 초청을 받아놓고 있었고, 유럽의 지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불소 정상이 회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견해가 없지는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폴란드사태, 인권문제 등을 들어 소련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도 줄곧 소련측에 협상신호를 보냈던 프랑스였던 만큼 「미테랑」의 방소는 전혀 의외의 일은 아니다.
프랑스로선 아프가니스탄사태 이후 계속 막혀있는 양국간 대화의 길을 트고 대소무역 역조시정, 시베리아산 천연가스 도입과 관련한 경제현안을 해결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 「미테랑」의 모스크바 방문은 동서대화 재개의 중재역도 충분히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런던의 서방 7개국 경제정상회담때 「미테랑」의 방소계획을 설명받은 정상들은 그의 방문으로 동서화해의 길이 트이기를 공동명의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크렘린당국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미소정상회담은 열릴 가능성이 없다고 못박고, 우주무기경쟁확대(별들의 전쟁)를 예방하려는 소련의 노력에 동참할 것을 프랑스에 요구하기만 했다. 「미테랑」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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