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거구제 빈말의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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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선거법협상에 임하는 여야의 자세는 이래도 괜찮은지 의심스럽고 걱정스런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행 선거구제 고수가 당론이라던 민정당은 1구1∼3인제를 내놓더니 이제와서는 민한당이 좋다면 1구1인의 소선거구제로의 환원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민정당의 이런 입장표명은 민한당이 1구1∼3인제가 제1야당의 약화를 꾀한 극히 자의적 제안이라면서 아예 소선거구제를 채택하자고 주장한데 따른 반응으로 나왔다.
유신이후의 현행 1구2인제는 「나눠먹기식 제도」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점에서 민정·민한당이 1구1인의 소선거구제로 환원하겠다는 진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면 크게 환영할 국민이 많을 것이다.
지금도 혹시 여야간에 소선거구제 논의가 활발해지다보면 8대국회 이전의 소선거구제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고 기대하는 국민도 없으란 법이 없다.
그렇다면 여야정당, 특히 집권 민정당은 소선거구제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명으로 국민들에게 이 제도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한 셈이다.
그런데 과연 소선거구제를 제기한 민정·민한당이 소선거제도로의 환원에 진지한 자세를 지니고있는 것일까.
민한당 내에서는 한때 민주제도개선특위에서 소선거구제 환원시안을 마련했다가 당 지도부에 의해 일축된 일이 있다.
실제로 2등 당선이 대부분인 야당의원, 특히 지방출신 야당의원 중에는 소선거구제라면 당선되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민한당의원들중 상당수는 명분은 약한데도 현행제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소선거구제 시안이 일축된 후 이 제도에 관해 당내에 진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
그런 사정은 집권 민정당도 마찬가지다. 여야 대립과 정치과열을 이유로 유신 하에서 채택된 1구2인제는 같은 이유로 제5공화국에서도 답습됐고 민정당은 이러한 선거구제의 골격유지를 거듭 공언해왔다.
최근 1구1∼3인제 제안으로 부분적인 변형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전반적인 소선거구제로의 전환은 과문의 탓인지 고려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여야간의 소선거구제 환원논의는 체중이 실리지 않은 빈말의 공방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의심을 받기가 십상이다.
자기도 전혀 받아들일 의사가 없으면서 상대방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약점 찌르기로 이 소리 저 소리가 오간다면 그것은 장난기나 말재간이지 이미 국민을 의식한 정치협상일 수가 없다.
정치인들간에 밀고 당기기는 있을 수 있지만 국민들에게 결국 깨질 수밖에 없는 헛된 기대나 환상을 갖게 한다면 그 정치의 공신력은 어떻게되는 것인가.
결국 정치와 협상의 결과는 국민의 평가와 심판을 받는 것인데 정치인들이 여야간 게임에만 집착해 국민을 의식하지 않고 정치를 희화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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