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5) 제80화 한일회담(244)-「김-대평메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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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7번째의 악수-.」12월3일 일본외무성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한일회담 제1차본회의에서 나와 일본측수석대표가 책상을 사이에두고 악수하는 장면에 대해 어떤 신문이 설명한 제목이었다.
그것은 13년간 6차례에 걸친회담에도 타결안된 한일관계정상화가 이번엔들 별성과가 있을까라는 회의를 짙게풍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날의 첫회담을 끝내고 이번에는 결말이 날것이라는 희망을 막연하게나마 감지했다.
내가 인사를 통해 『한일양국관계와 전도는 이번 회담을 통해성취될수 있는 결과에 따라 크게좌우될것』 이라고 이번 회담의 중요성용 강조하자 신병으로 불참한 「스기」 수석대표를 대신한 「우시바」일수석대표대리도 『이번 회담이 최후의 회담이 되기를 바란다』 고 역설했다.
일본측이 한일회담역사를 통해 이같은 강한 표현으로 .타결의지를 보이기는 처음이였다.
나와 「우시바니대표는 3개분과의위원회의 일정과 회담운영방식에 쉽게 합의하고 45분만에 회담을 끝냈다.
일본측은 이날 「시이나」 외상이 명년1월하순 또는 2월중순에 방한하겠다는 공식입장을 전달했다.
동경에서 이같은 진전이 이루어지던 이날 서울에서도 한일회담과 관련한 이색모임이 벌어졌다.
이동원외무장관은 이날상오 장관실에 민정당의 김준연의원 (당무위원), 유옥우의원(정책위의장), 강문봉의원 (외무위원)등3인을 초청해 김-태평메모의 원본을 공개했던 것이다.
이장관의 설명을 들어보면『김부평메모에 대해 「매국헙정이다」 「굴욕협정이다」는 등의 의혹과 비판 때문에 외교는 물론 내치에도 막대한 곤경을 겪었지요. 그래 생각다 못해 외교기밀의 비공개라는 외교관례를 무시하기로 작정하고 박대통령과 정총리의 양해를 구했습니다. 한일회담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다. 국민에게 모두 알려 이해를 얻고서야 한일회담을 타결할 수 있다는 소신도 작용했지요. 고의층의 설득은 별문제가 없었는데 정작 고생한것은 외교실무진들의 완강한 반대를 납득시키는 일이었지요. 그래 프로터콜도 외교에 도움이되는, 범위안에서 지켜야 하며 더군다나 내용이 다 알려진 것이 무슨 비밀이냐고 여러차례 설득을 시도한 끝에 간신히 실무진들의 마지못한 양해를 얻어냈답니다.』
이장관은 이 메모의 공개를할터이니 대표를 선정해 장관실로 보내라고 요청했고 그래서 낭산(김준연씨아호)등과의 모임이 이루어졌다.
낭산등이 메모원본을 보니 「문자 그대로 메모용지에 청구권액수의 대강을 숫자로 간단히 쓴것에 불과한 별것아닌 내용」(강씨증언)이었다.
이에 낭산는『이 메모에 책임자의 서명도 없고 필체도 국민학교졸업정도의 것으로 봐서 원본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주장,『이것 말고 진짜메모를 가져와』라고 대갈했을 정도로 김-대평메모는 알려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장관은 낭산등 야당간부들은 메모를 보여주겠다는데, 그리고 정말 보여 줄까 했는데 정말 원본을 보여 준데, 그리고 막상 보니까 내용이 별것이 아닌데 세 번 놀라고 또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고 회상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야당대표중 유일한 생존자인 강문봉씨도 최근『그 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고 그것만으로 흑막을 판단하기에는 미흡한 자료였다』고 토로하고 『그같은 기록을 남기기까지 양자사이에 오고간 협상내용이 더 중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장관의 이같은 기상천외한 극비의 외교문서의 공개에도 불구, 김-대평메모에 대한 의혹이 계속됐다는 사실은 한일관계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려준 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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