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폭력시위 문화 퇴출시키는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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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시민단체들은 어제를 경찰폭력 추방의 날로 정하고 촛불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서울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가했던 홍덕표씨의 사망과 관련해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경찰청장 파면을 요구했다. 홍씨는 목뼈 손상으로 인한 급성 염증을 치료하던 중 숨졌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과도한 대응 때문이라니 유감스럽다. 홍씨가 2남2녀를 둔 소작농이라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

홍씨의 사망 원인은 과격 집회와 과잉 진압이 악순환하는 독특한 시위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위자의 불법적인 집회 방식이 큰 문제다. 집회신고 시 약속한 시간과 장소를 어기는 것은 물론 흉기나 다름없는 시위용품을 죄의식 없이 반입한다. 경찰이 설정한 폴리스 라인을 우습게 여기고 여차하면 쇠파이프.죽창을 휘두르고 태연하게 경찰 버스에 방화하고 화염병을 투척한다. 진압 경찰은 대개 20대 초반의 전.의경으로서 시위대의 각목에 얻어맞다 보면 감정적으로 맞서 방패로 때리면서 양쪽에서 부상자가 속출한다. 농민대회 당시 다친 경찰과 전.의경은 218명이고 전농 측에 따르면 농민 600여 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 문제는 폭력시위다. 그 배후에는 불법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단호한 대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위대가 시위용 무기를 사용해도 경찰이 서로 티격태격 싸움하는 식으로 방어하니까 폭력이 더 과격해지는 것이다.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엄단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불가피하다면 최루탄이라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폭력시위가 없어진다.

무법천지식 시위가 이제는 국경을 넘고 있다. 서울에서 하던 똑같은 방식으로 홍콩에서 폭력시위를 하다 11명이 기소됐다. 한국민의 준법의식이 얼마나 희박한지 보여준 것이다. 폭력 동원을 의사표시의 수단으로 여기는 한국형 시위문화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데도 적당히 눈감아주는 온정적인 태도는 오히려 폭력시위를 부채질한다. 평화적 시위가 정착돼야 불상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