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 「선거법 협상」…「1구 다인제」 애드벌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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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거법 협상이 급전하고 있다. 선거구 문제는 꺼내지도 말자던 민정당이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1구 다인제와 부분적인 소선거구제 도입 가능성이 논의되고 사회주의 정당 보호를 위한 정책 지구 설정 가능성도 널리 추측되고 있다.
7일 선거법 협상 벽두에 나온 『지역구의 인구 불균형을 시정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의식하고 있다』는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의 발언은 꼬리를 물고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권 총장 자신은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는 부산한 상황에서 나온 「실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8일 조간신문에 권 총장의 말이 분구 가능성 쪽으로 보도되자 권 총장은 김용태 대변인을 통해 자신의 말이 국민당이 주장하는 1구 다인 선출제의 검토용의 일수도 있음을 흘렸다.
민정당 측이 검토하고 있다는 안은 ①현재의 선거구 당 평균 인구인 43만명을 기준으로 △20만명 이상 많은 63만명이 상 또는 70만명 이상 선거구는 3명 △기준보다 15만명 이상 적은 28만 미만은 1명 △28만∼63만명 또는 70만명은 현행대로 2명을 뽑고 전국구는 그대로 두는 안 ②국민당 안대로 일부 지구에는 3∼4명을 선출하되 전국구를 지역구의 40%로 줄인다는 안 등이다. ①안의 경우 1구 1인이 될 지역이 대개 여당이 유리하게 마련인 농촌 지역이이서 거기를 민정당이 휩쓸면 1구 3인 지역에서 복수 공천을 안해도 여당의 안정세는 유지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동안 민정당 안에서도 다당 제도에 중선거구를 채택한 이상 1구 다인제가 『논리적으로는 합당하다』는 「사견」들이 적지 않았다.
또 김종철 국민당 총재가 지난 3월 정부-여당 측과의 고위 협의 때 1구 다인제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었다는 점을 들어 몇몇 국민당 당직자들은 상당한 기대를 걸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정가 관측통들은 아직 1구 다인제가 민정당의 「진심」인가에 대해서는 의아해하고 있다.
8일 상오 민정당 당직자 간담회가 끝난 뒤에도 정석모 정책위 의장은 『권 총장이 국민당 안을 얘기했다고 해서 민정당의 현행 선거법 골간 고수 입장이 바뀌었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투표권 평등 원칙에 대한 민한당의 문제 제기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국민당의 기계적인 인구 비례 주장에 대해 1구 3∼4인만이 아니라 1구 1인제도 있을 수 있음을 알린 것』이라고 해석.
국민당 측은 지난 선거 때 32개 지구에서 동메달을 땄으므로 1구 다인제만 되면 국민당은 거뜬히 존립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 측은 국민당 안을 검토한 끝에 『야당 성향이 강한 도시 지구에 다인제를 택하면 민한당이나 야권 신당에 유리하다』고 분석하고 『국민당의 판단 착오』라는 결론을 내린 일도 있다는 얘기다.
또 1구 다인제는 가뜩이나 포화 상태인 정치 지망생의 공급 과잉 상태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3위 목표의 신당이나 후보자가 마구 생겨나면 「조용한 선거」나 「기존 정치 질서의 유지」에는 차질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무총장 회담 때 권 총장은 또 밑도 끝도 없이 『정치적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도 없고…』라는 말을 가볍게 흘렸다고 한다.
이 발언은 최근 민정당 쪽에서 「정책 지구」라는 말이 흘러나온 것과 연관시켜 보면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동안 정부-민정당 측은 대외용의 민주사회주의계 정당 육성에 몹시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과연 서울 강남 (고정훈 신사당 총재 지역) 등을 정책 지구로 지정해 민한당에 후보자를 낼 수 없게 금족령을 내릴 수 있을는지에는 많은 의심이 뒤따랐었다.
사실 민한당 측도 이 점을 내심 매우 염려했었다. 유치송 총재는 최근 가까운 한 인사에게 『이번에도 강남에 후보를 안냈다 가는 민한당은 정내혁 민정당 대표위원의 말처럼 30∼40석 정당으로 전락하게 되네』하며 정책 지구 배제의 결심을 피력했다는 것.
민한당의 이같은 원심적 상황과 사회주의 정당의 지원이라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전국구 배분 방식의 변경이 묘수로 등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즉 전국구 의석을 제1당에는 일정수의 프리미엄을 미리 주고 나머지를 투표 비율로 배분함으로써 민정당은 현재와 크게 벌어지지 않는 의석을 차지하고 신사당에도 몇개의 전국구 의석이 돌아 갈 수 있게 하지 않겠느냐는 것.
실무 대표들이 외국의 입법례를 연구, 검토하겠다는 것도 이같은 전국구 배분 방식으로 몰고 가자는 속셈인 것 같다는 추측이 없지 않다.
『현행 선거법이 곧 민정당 안』이라고 주장해온 민정당 측이 현행 선거 제도의 골간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1구 다인제나 전국구 배분 방식을 협상 초반에 내놓은데 대해 민한당 측은 『그 꿍꿍이속을 알 수 없다』고 뒤통수를 한대 맞은 표정.
민한당 측은 『결국 민정당 측이 협상의 기선을 제압하자는 양동 작전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유한열 사무총장이 협상 벽두부터 『현행 선거법은 유신잔재』라고 정공법으로 치고 나온데 대해 1구 2인제에 안주하고 있는 민한당의 아픈 곳을 역공함으로써 협상을 민정당 주도로 이끌어 가자는 작전이 아니겠느냐는 것.
아뭏든 당초 민정-민한당의 협상에 국민당이 들러리를 서는 인상을 줬던 선거법 협상이 이제는 민정-국민당의 합작에 민한당이 밀리는 골로 양상이 바뀌었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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