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들린 중소기업상대 "딱지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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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딱지사장」으로 불리는 어음브로커들이 무더기로 검거되었다.
딱지. 이는 복부인들이 군침츨 삼키는 철거민 입주권이 아니라 이미 부도가 예정된 회사의 백지어음을 말한다.
이 딱지가 숱한 중소업자들을 울리고 사회정제를 교란시켰다. 이것만을 전문적으로 유통시키는 경제범들에 대해 검찰이 손을 댄것은 지난2월. 4개월 가까운 공작과 추척끝에 지하경제의 최대조직인「금용보파」일당을 검거한 것이다.
김씨는 딱지어음계에서도 알아주는 거물. 72년부터 딱지에 손을대 수억원대의 재산을 모은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을지로 W호텔에 직원2명을 둔 전용사무실까지 차려놓고 매일아침 로열살롱 승용차로 출근하는 주위로부터는 돈많은 「김회장」으로 통했다.
그는 이미 80년에 8억여원의 딱지장사가 들통나 구속기소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중증폐결핵때문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번에 또다시 구속된것이다.
출소후에는 재수감될 것을 우려, 주민등록을 말소시켰고 항상 폐결핵진단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수사관들이 서울신길동 김씨집을 덮쳤을때 그는 안방 장농속에 숨어있다가 증거물을 찾아 장농까지 뒤지는 바람에 들켜버렸다.
자금압박을 받는 중소사업자들이 이들 어음브로커들의 고객.
피해자중 조모씨(41)는 조그만 전자부품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연초에 영업과장이 물품대금을 챙겨 달아난데다 몇몇 대리점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심한 자금압박을 받게되었다.
하청받은 부품을 납품하려해도 원자재대금과 종업원월급줄 돈이 없어 막막하기만했다.
그러던중 조씨는 어디서 딱지어음 소문을 듣고 구세주를 찾듯 딱지사장을 찾아나셨다. 청계천6가의 한다방에서 조씨는 박사장이라는 사람을 만나 70만원을 건네주고 액면 5백만원이 적힌 어음한장을 받았다. 박사장은 『즉시 유통시키는것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조씨는 이 어음으로 자재대금등 우선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며칠뒤 이어음은 부도가 나게 되어있었다. 그어음의 최초발행인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최후의 취득자는 배서한 사람을 붙잡고 아우성을 쳐봤자 그동안 4∼5명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결국 민사소송거리밖에 안되는것이다.
부도가 예정된 어음이 어떻게 이둘 브로커손에 들어가는 것일까.
딱지사장은 전국의 중소기업이나 가내공업의 경영사정을 손바닥 들어다보듯 알고있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회사의 금고안을 자기집 냉장고속보다 더 훤히 알고 있다. 어음브로커들의 자금·정보·기동력때문이다.
부도일보직전의 회사를 찾아가 그들이 갖고있는 어음을 헐값에 사들여 부도나기전까지(보통 3∼4개월)유통시켜 버리는 것이다.
망하게 되어있는 회사입장에서는 어차피 종이조각에 불과한 이 어음을 팔아 단돈 몇푼이라도 건지는것이 상책이다.
어음브로커들은 백지어음확보책으로 유령회사를 설립, 은행과 어음거래 개설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망하는 회사의 어음구입비는 장당 20만원이 보통.
이를 또다시 자금사정이 급한 사업가에게 70만∼80만원에 넘겨 세상에서 제일 이문이 높은 종이장사를 하고 있는것이다.
만일 선의의 어음소지인이 부도가 나기전에 지급제시를 할때는 브로커들은 갖고있는 몇십장의 어음을 활용할수 없게된다. 이때는 은행에 사취계를 내고 일당중에 허위채권자를 내세워 법원으로부터 압류처분을 받은뒤 공탁금과 보증금을 회수하는 악랄한 수법까지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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