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외교무대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17일 새벽 브뤼셀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모인 각국 대표들은 예산안이 타결되자 메르켈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지난달 22일 총리 취임 후 첫 국제회의에서 메르켈이 중재자 역할을 훌륭히 해냈기 때문이다. EU의 오랜 숙적 프랑스와 영국의 팽팽한 대치에 메르켈이 뛰어들었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분담금 축소와 농업보조금 축소"를 주장했다. 프랑스 시라 크 대통령은 이에 모두 반대했다. 정상회담이 결렬위기로 치달았다.
메르켈은 전임자인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슈뢰더가 말하기를 좋아하는 달변인 데 비해 메르켈은 조용히 상대편의 입장을 경청했다. 무조건 시라크 편을 들었던 슈뢰더와 달리 메르켈은 중립을 지켰다. 결국 합리적 중재자인 메르켈의 권고를 받아들여 블레어와 시라크는 한발씩 양보했다. 블레어는 분담금을 덜 돌려받는 수정안을 받아들였고, 시라크는 농업보조금 제도 개선을 추후 논의한다는 데 동의했다.
협상의 마지막 고비는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더 많은 재정지원을 요구하며 기존 회원국과 갈등을 빚었다. 다시 메르켈이 나섰다. 폴란드가 1억 유로의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보장했다. 추가로 드는 비용은 "독일이 맡는다"는 통 큰 제안이었다. 폴란드 마르친키에비치 총리는 "가장 아름답고 멋진 단합의 표시"라고 극찬했다. 오스트리아 볼프강 쉬셀 총리는 "메르켈이 매우 전문가답게 행동했다"고 치켜세웠다. 영국 대표단은 "메르켈 총리의 균형잡힌 외교스타일은 유럽 정치지형에서 큰 변화를 시사한다"고 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