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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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빠른 시일 내에」시조를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어옵니다. 습작하는 분들 말고도 신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내에 유명해지고 잘 쓸수 없겠느냐고 말합니다.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럽 습니다.
층계를 밟아 오르는 상승일진대 층계를 밟지 않고 계단을 오르려는 심산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움이 무엇이며 이미지는 어떤 것이고 또 리듬의 훈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터득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훈련은「읽고, 생각하고, 쓰기」의 세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훈련을 병행해야 하는데 이중에서도「쓰기훈련」이 그중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이길만이 시조창작의「터득의 길」이 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읍니다. 다만 매일 적어 보내는 듯한 졸속과 급조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시조의 이미지에 있어서도 미처 숙고의 과정을 밟지 못하기 때문에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떨어지기가 십상입니다. 진한 진통과 숙고를 거쳐야만 훌륭한 작품이 출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느 분은 작품 하나를 남기기 위해 1년, 또는 2년을 두고 긴 숙고를 거듭한다고 말합니다. 익히는 과정에 시일이 필요하듯이 퇴고를 하는 과정 또한 시일을 두고 마무리해야만 합니다. 이 난을 맡아오면서 동일인의 계속된 게재를 막고 새사람을 발굴하기 위해 우수작을 뒤로 미루기도 했음을 밝힙니다.
김복수의『아버지』는 육친에 대한 애정과 충정이 갈 배어 있다고 보았읍니다다만 승화와 비약이 아쉬웠다는 말을 남겨 두고 싶습니다.
김병중의『고향산조』는 무난한 서경을 펼쳐 보입니다. 관념의 꼬리가 비치건만 잘 극복하고 있군요. 각수의 초장이 비교적 새롭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강제만의『자전거행』은 바람과 햇살이 감기듯이 싱싱함을 일깨웁니다. 중장과 종장의 표현이 대체로 새롭습니다.
최규옥의『삽화』는 어쩌면 동시적인 발상인데 비유가 문득 새로와 보입니다. 중장의 표현이 이 시조를 잡고 있읍니다.
허몽구의『조간신문』은 조간신문의 싱싱한 잉크냄새를 표현했는데 잘 적중하고 있읍니다. 중장과 종장이 그러합니다.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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