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시위 돌변 가능성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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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 시위대가 언제든 극렬한 폭력시위를 벌일 가능성 때문이다. 홍콩 경찰의 앨프리드 마 공보국장은 15일 "시위가 격화될 경우 단호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맞불을 놓듯 이수금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날 "WTO 폐막일인 18일 누군가 자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14일 낮 완짜이(灣仔) 화물적치장에서 한국시위대 120명은 홍콩 경찰과 충돌했다. 당시 시위대는 경찰 방패 14개를 빼앗았다가 돌려줬다. 홍콩 신문들은 이튿날 일제히 이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홍콩에선 경찰 도구를 탈취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범죄다. 다행히 홍콩 경찰은 방패를 돌려받은 다음 더 이상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천다오밍(陳道明) 명보(明報) 기자는 "그것도 홍콩에선 상상이 안 될 엄청난 시위였다"고 우려했다.

한국인 시위가 문화행사처럼 진행되는 점도 한몫한다. 14일 오후 홍콩 섬의 중심가 빅토리아공원에서 진행된 '아시아 민중 결의대회'는 문화축제마당 같았다. 대학생들은 율동과 음악으로, 농악대는 사물놀이로 흥을 돋웠다. 율동을 리드한 대학생 민사원(22)씨는 30여 명의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20여 분간 취재 공세를 받았다. 또 전농 소속 농민들이 '닭싸움'을 하자 수백 명의 외국인들과 기자들이 몰려 "무슨 놀이냐"며 질문 공세를 펼쳤다.

일사불란한 시위대의 움직임도 화제다. 집회가 끝나면 휴지를 줍고, 이동 과정에선 흐트러짐이 없다. 박수와 함성은 리더의 구령에 맞춰 진행된다. 일부 기자들은 "혹시 군대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들은 15일 오후엔 코즈웨이 베이 지역에서 1500여 명이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면서 WTO 반대 구호를 외쳤다. 홍콩 언론은 '추치부이(出其不意.의표를 찌른다)의 연속'라고 말한다. 이들의 최대 관심은 회의 마지막 날인 18일 가두행진 때 평화 시위 약속이 지켜질 것인지다.

홍콩에 사는 한인 사회에선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콩에서 20년 넘게 사업을 하는 50대의 S씨는 "올 초 한류가 홍콩을 휩쓸기 전에 홍콩 언론의 한국 관련 보도는 대부분 과격시위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농민 시위 때문에 한국 이미지가 한류에서 과격시위로 다시 바뀔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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