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시바우 대사 발언 도움 안 돼" 정부, 미국에 우려 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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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은 범죄정권' 등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대북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가 주미 대사관을 통해 미국 정부에 우려를 표명한 사실이 이날 밝혀졌다.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에 대한 여권 내부의 거부감도 더욱 뚜렷해졌다.

◆ "미 행정부 입장 반영한 것"=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위성락 주미 공사는 12일(현지시간) 조셉 디트러니 미 국무부 대북협상대사와 만나 "버시바우 대사가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을 비판한 것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냐"고 묻고 "이는 6자회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위 공사는 14일 "외교적 대화 내용을 모두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디트러니 대사와 12일 만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위 공사는 "디트러니 대사는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이 연설 원고를 읽을 때 나온 게 아니고 질의 응답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했다"며 "연설은 원고가 중요하며, (한.미 양국은) 미래를 보고 나아가자는 게 미국 측 입장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또 다른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날 "미국은 북한의 특정 활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왔으며, 버시바우 대사의 북한 관련 발언은 이 같은 미 행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 "수위를 넘어 유감"=15일 김원기 국회의장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나와 "버시바우 대사의 여러 가지 발언이 수위를 넘은 것 같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이 13일 버시바우 대사의 본국 소환 결의안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개인 의견인지는 모르지만 그 단계까지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남북 간에 평화 기류를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로서는 사활적인 문제인데 주재국 대사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약간의 지원을 갖고 상대가 금방 눈치 챌 지렛대나 족쇄로 쓰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경제협력은 6자회담의 진전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한 버시바우 대사의 12일 발언에 대한 응답이란 해석이 나왔다.

문제는 이 같은 논란이 한.미 간의 관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외교를 모르는 현 정권의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입법부 수장이 공개석상에서 주재국 대사의 발언 내용을 비판한 것은 실수다. 미묘한 문제일수록 외교관들이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유재건 국회 국방위원장)는 우려가 나왔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박소영.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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