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생물학이 천대받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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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리산에 방사한 어린 반달곰들이 인간 이외에 도구를 사용하는 지능이 높은 동물로 알려진 침팬지나 오랑우탄처럼 돌과 나뭇가지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잠자리를 만드는 흥미로운 사실을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자연에서 살아가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야생동물의 삶의 비밀은 연구하면 할수록 궁금증이 풀리기보다는 더 많은 새로운 의문을 끊임없이 던져준다.

순수 기초과학이며 자연과학인 생물학은 모든 생명체의 탄생부터 사멸에 이르는 전 과정의 자연의 질서, 진화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철학과 같이 형이상학적 학문의 영역이라는 대학 시절의 은사의 가르침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인간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1000만 이상의 생물종의 하나인 점에서 생물학은 우리들의 생명 영위의 본질적 과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정립하는 중요한 학문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날까지 생명 본질의 제 현상과 문제를 해결하는 생물학은 반드시 필요한 학문인 것이다. 오늘날 윤리로 대변되는 과학철학 사상은 생물학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으로, 의사가 직업인으로서 병을 고치기 이전에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윤리 소명을 강조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1세기 지구촌 선진경제 국가에서는 IT(인공지능/첨단정보 기술)와 BT(생명공학)라는 두 가지 새로운 산업이 불확실한 국가의 미래 성장과 경제적 안정을 책임질 수 있는 원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없이 IT와 BT 산업 발전만이 유일한 살 길인 것처럼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 등 정부 부처에서 앞 다투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사회 발전의 중심에 서서 학문의 상아탑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지니고 있는 대학가에서는 더 나아가 인류 생존의 본질적 자연과학 학문인 생물학을 폐지하고,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애완동물학과로 전환하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환경과 생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없이 이루어진 대규모 개발사업과 공업화에 의한 환경 훼손, 특히 화학물질의 남용은 불과 20~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우리의 사랑스러운 어린 생명들에게 너무나 크나큰 고통을 주고 있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새집증후군, 아토피성 피부병, 이타이이타이병, 미나마타병 등은 대표적인 공해병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가릴 것 없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물질의 과잉 홍수 속에 우리의 정신과 몸은 그만큼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과 삶은 국가의 생물자원 다양성과 자연환경의 건강성이 보장되는 사회다. 이러한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올바른 학문이 제대로 평가받고, 사회에 그 성과가 반영되는 것이다. 생물학이 대학에서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만큼 생명윤리에 대한 의식 또한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다. 우리 인류의 불확실한 미래의 의식과 삶의 방식에 있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에 등대와 같은 존재 학문인 생물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한상훈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