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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브로' 국제표준 … 새 기회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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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불과 10년 전에는 국제기술표준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소외감과 서러움을 느꼈다. 국제표준 규격은 외국 업체들의 기술이 휩쓸었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한 번만 국제표준에 채택됐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꾸곤 했다.

표준화는 통신기술의 꽃으로 표현된다. 오로지 표준화를 통해서만 기술개발의 성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장비 간의 상호 호환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통신산업에서는 어떤 연구개발의 산물이라도 국제표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표준 경쟁은 치열하다. 특정 기술을 국제표준 규격으로 채택되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산고를 겪는다. 산업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기술일수록 더욱 그렇다.

새로운 표준이 되려면 시장 판도를 뒤흔들어 놓을 만한, 기존 기술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새로운 기술이어야만 한다. 부단한 연구개발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통신 서비스업체들의 강력한 사업화 의지도 필요하다. 시장성이 없는 통신장비 표준화는 애초부터 의미가 없다. 따라서 기술력과 시장성은 물론이고 기업과 국가의 뛰어난 협상력, 제도 및 정책적 지원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만 한다.

2004년 여름, 국제전기전자학회(IEEE)의 이동통신 분야 표준화 회의 때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국내에서 개발한 와이브로(무선 인터넷) 기술을 국제표준 규격으로 밀기 위해 한국의 저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자사의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술들이 하나씩 국제표준 규격으로 채택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 13일 드디어 와이브로 기술이 국제표준으로 최종 승인받았다.

와이브로는 순수한 토종 이동통신 서비스다. 이동 중에도 초고속 인터넷 수준의 빠르고 값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광대역 이동인터넷 서비스를 말한다. 내년 1월 시범 서비스를 거쳐 4월부터 상용 서비스가 제공될 예정이다. 와이브로는 산(産).학(學).연(硏).관(官)이 손을 잡고 내놓은 합작품이다. 국내 통신사업자들이 한 발 앞서 와이브로 서비스 개념을 정립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는 공동으로 새로운 기술과 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확보한 특허(지적재산권)도 수백 건에 달한다. 또 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중심이 돼 국제표준에 도전해 결국 국제표준 규격으로 승인받았다. 이는 더 이상 기술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이동통신 기술 하나를 확보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2007년이면 4세대 이동통신을 위한 새로운 주파수가 할당된다. 세계 각국은 그 표준방식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부단한 연구개발과 국제협상을 전개하고 있다. 당장 와이브로의 미래를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시장에 출시될 제품 규격의 표준화를 마무리해야 하고, 끊임없이 출현하는 경쟁기술을 따돌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와이브로 서비스의 활성화가 급선무다. 국내시장에서 안정성을 확보해야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

IT산업에선 1등으로 올라서기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 선두주자로 살아남으려면 더 빨리 달리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진정한 IT 강국이 될지는 지금부터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강충구 고려대 교수·전파통신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