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을 바라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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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머물러 괴어있지 않고 늘 흘러가는 물과같은 것이 세월이라던 옛사람의 말은 정녕 진리인 것인가. 삼도천을 넘나들며 생사의 기로를 해매던게 어제인듯 눈에 선하련만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엔 잎이 떨어지는 원형리정의 천지이치는 변함이 없어 어언 한 해가 지나갔고, 병실의 창너머로 보이는 북악을 바라보며 지나간 l년의 새월을 되돌아 보니 만가지 감회가 어우러져 명치끝이 타는 것 같다.
의식의 눈을 뜨고나서 맨처음 떠오른 것은 아버지의 얼굴이었고 그리고 강렬한 원망의 감정이었다. 서른세살의 꽃다운 나이에 총하지혼이 되어 이 서럽고 원통한 한반도의 구만리장천을 중유의 넋으로 떠돌고 계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무슨 까닭에서였으며 원망의 감정은 또 무슨 까닭에서 였을까.
인간에겐 반드시 혼이 있고 혼이 있으므로 가없는 생사의 바다를 넘나든다는 불교적 윤회관을 굳게 믿고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것이었다. 착잡한 심히로 불면의 밤을 보내기 며칠만에 지극히 당연한 이지를 깨닫고 부끄러움에 몸을 떨어야했으니, 그것은 개인과 집단 또는 부분과 전체의 문제였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해방을 위하여 일신과 일가의 행복을 초개처럼 저버렸던 중유의 넋들이 내 자식 내 가족의 안위와 행복만을 위하여 힘을 쏟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정신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될 게 아닌가.
며칠의 밤을 불면으로 새운끝에 지극히 당연한 이 사실을 깨칠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원망은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이만큼이라도 육신을 부지하게 해준 것은 바로 아버지의 힘이로구나.
모순과 질곡으로 병든 삼악도의 세상, 갈가리 찢겨진 시대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몸전체를 붓삼아 뚫고나가는 진정한 작가가 되라는 시련의 채찍으로서. 김성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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