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 수사관의 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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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강력사건이 미궁에 접어들 때마다 『뛰는 범죄에 기는 수사』라는 말이 나온다. 범죄는 날로 지능화·기동화 하는 데 이들을 따라 잡을 범죄수사능력은 답보상태에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수사능력은 수사의 과학화로 통한다.
증거수집에서부터 범인추적·검거에 이르기까지 수사장비를 활용하고 유능한 수사관이 과학수사를 벌여 개가를 울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사는 수사장비와 유능한 경찰관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경찰이 창설된 지 39년이 지났는데도 「기는 수사」라는 불명예를 얻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유능한 수사관의 확보가 답보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치안본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사전담연구기관을 신설하고 퇴직수사관 가운데 우수한 수사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대거 채용,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라고 한다.
치안본부는 이를 위해 총경급 이상의 퇴직자와 수사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퇴직경찰관의 현황을 파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체포 과정에서 과학적 증거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과학수사를 벌여야 하지만 수사관의 오랜 경험이나 육감도 과학수사 못지 않게 주요한 구실을 할 때가 많다.
과학장비가 도입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범죄를 수사관의 육감으로 해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한때 「육감수사」를 경찰의 수치처럼 여기던 때도 없지 않았으나 다시 이를 중시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수사생활을 오래한 수사관은 살인현장을 흘긋 둘러만 보고도 이른바 「감」을 잡고 범인추격에 당장 착수하게 마련이다.
경찰의 계급정년제 실시 후 이처럼 노련한 수사관은 한창 경험을 토대로 일할 나이에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또 수사경찰관들의 경찰 안에서의 경시풍조와 불리한 승진기회 때문에 유능한 수사관의 육성이 지극히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한마디로 경험은 책이나 다른 지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오랜 체험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지극히 소중한 것이다.
치안본부가 뒤늦게나마 우수한 퇴직 수사관을 활용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앞으로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으로 남아 있다. 이들 퇴직수사관들의 처우도 그러하거니와 업무 한계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업무 한계를 분명히 그어주지 않고 처우가 미미할 때 자칫 옥상옥격이 되거나 마찰이나 충돌이 일어 더 큰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이들에게 일괄 위탁하는 형식도 취하고 있다.
또 정부가 공인해주는 사설탐정과 비슷한 방향에서 활용하기도 한다. 이 제도에 필요한 예산은 일본처럼 예비비로 충당, 융통성 있게 채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어야할 것이다.
모든 범죄발생은 『범인은 반드시 잡히고야 만다』는 인식이 뿌리내릴 때 줄어들게 마련이다.
연간 7천여 건의 강력사건이 발생하고 아직도 서울 화곡동 의사 모녀 살해 사건이나, 롯데호텔 미국여인 살해사건 등 주요 사건이 미제로 남아있는 현실에서 하루빨리 퇴직수사관 활용 방안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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