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당하게 경선을 못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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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l5일의 민한당 중앙상무의 의장단선출 광경을 지켜본 뒷맛은 어쩐지 개운치가 못했다.
당 지도부가 원하던 대로 후보단 일화가 이뤄져 만장일치의 박수로 의장이 추대되었지만 거기에는 야당의 대회장이면 으레 따르던 흥분도, 열기도 없었다. 이런 것이 과연 민한당의 단합상을 과시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과거 야당이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나 당수를 공개경쟁을 통해 선출할 때 경선 후보들이 치열한 표 대결을 벌이다가도 일단 승부가 나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것은 선출과정의 온갖 잡음을 씻고 야당의 이미지를 높이는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됐었다.
특히 민주화를 투정목표로 내걸어온 야당으로서는 그같은 경선이 당내 민주주의를 내외에 과시하고 야당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고 말해왔다.
창당 이후 총재를 비롯한 중요선거 당직을 한번도 경선에 의해 선출하지 않은 민한당이 11대 국회 임기 중에는 마지막 경선 기회인 중앙상위의장마저 또다시 추대형식으로 선출하고 만 것은 전통 야당의 승계세력을 자처하는 민한당에 반드시 플러스의 이미지를 보탠 것 같지는 않다.
『총선거를 앞두고 당익 단합을 과시해야 할 때에 경선을 하게되면 그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게되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당 지도부의 설득은 논리로서도 충분치 못했던 것 같다.
대통령 직선·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요구하는 민한당으로서는 오히려 자가 당착적인 논리라고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경선이 벌어지면 과거처럼 불미스런 뒷거래가 나타날 수도 있고 당 이미지에 먹칠할 분열상이 노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창당 3년 동안 이질적 요소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취약한 구조를 가진 민한당에는 그것을 일시에 드러낼지도 모르는 경선이 두려운 시련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경선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더우기 당직에서 따돌림받은 몇몇 소외파들의 불만제기와 이를 뒤에서 부채질하는 비주류의 배후지원을 기대하고 시작된 경선 움직임이라면 당 지도부는 그러한 불만과 비판을 그대로 묻어두는 식이 아니라 이를 드러내어 표 대결-승복이란 떳떳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민한당의 자생력을 회복하고 야당성을 보이는 길이였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명분들은 총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당직·공천 등 현실적 계산 앞에 맥을 추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감이 든다.
『선거 그 자체가 있다는 것을 위해서도 나서겠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경선을 포기한 후보자들, 얼굴을 가린 채 뒷전에서 부채질이나 하는 방관자들, 당 지도부의 고식적인 조정력 등이 중앙상위의장선거를 우스꽝스런 해프닝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한번 심각하게 되짚어 보아야 할 일들인 것 같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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