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의 한국 "무척 변했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무 것도 없이 텅 비다시피했던 한국을 보고 떠난 뒤30년만에 다시 와보니 너무나 엄청나게 변해 있었어요.』
제2대 주한미대사「엘리스·브리그스」대사(지난 67년 작고)의 미망인「루시」여사(81)는 한국의 변화를『잘려나간 나무등걸과 앙상한 가지가 어느새 울창한 숲으로 바뀐 것과 같았다』고 한국 재방문 소감을 말했다.
「루시」여사는 1952년한국동란 와중에 대사로 부산으로 부임하는 부군을 따라한국에 왔다가 휴전 2년 후인 55년「브리그스」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때 한국을 떠났다가 이번에 30년만에 다시 방한했다.
『처음 부산에 도착해보니 보이는 것은 피난민과 하늘의 폭격기였고 들리는 것은 폭탄 터지는 소리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의 비극의 현장을 목격했던 외국대사 부인답게「루시」여사는 당시 기억을 피난민과 폭격기로 연상해냈다.
그래서 경부선열차를 이용, 진해를 잠깐 다녀오면서『줄곧 차창 밖으로 아름답고 풍요롭게 변해있는 산하를 보느라 넋을 잃었다』는 것.
서울 수복 후 서울로 이사한「루시」여사가 맨 먼저 시작한 것이 전쟁미망인을 돕는 일이었다. 그녀는「프란체스카」여사의 간곡한 당부가 있어서 당장 전쟁미망인 구호사업을 시작했었다』고 말했다.
그같은 인연으로 서울체류기간 중에 이화장을 방문,「프란채스카」여사와의 30년만의 해후가 너무나 감격적이었던「루시」여사는 분홍색 한복용 곱게 차려입고 갔었다.
그 한복은 55년 한국을 떠날 때 어떤 한국인 친구가 기념으로 선물했던 것으로 이번에 다시 가져와 처음으로 입어보았다.
『기나긴 세월동안 고이 간수했더니 상한데 없이 아직도 깨끗하다』는 그녀의 설명이었다. 미국대사판저에서 만난「루시」여사는 나이에 비해 20년은 젊어보일 만큼 건강해 보였으나 가끔 보청기를 낀 오른쪽 귀에 손을 대고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곤했다.
그녀는 이번 방한이 남동생과 절친한 사이인「워커」주한미대사부처의 초청으로 가능했다며 그동안 정들었던 몇몇 장소와 판문점을 다녀왔다.「루시」여사는 현재 1952년 부산부임 직후 한국에서 남은 딸과 파나마대사를 지내고 있는 아들을 가끔 찾아가 5명의 손자·손녀들을 보는 것이 낙이라고 말했다.<진창욱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