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의 「한양조」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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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연 큰 변화가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
요즘 들어 한반도얘기가 우리 주변에서 풍성하게들 오고 갔다.
호요방 중공당 총서기의 일본방문(83년11월)과 조자양 중공수상의 워싱턴방문(84년1월) 때도 한반도 문제가 깊이 논의됐고 「나까소네」일본수상의 북경방문(3월)때도 한반도문제는 도마 위에 울려졌다.「레이건」미대통령도 4월 북경에서 중공지도자들과 한반도문제를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레이건」의 방중직후엔 「슐츠」미 국무장관이 서울로 와서 방중결과를 우리정부에 설명했고 호요방은 평양에 가서 김일성에게 「레이건」과의 회담결과를 설명해줬다.
김일성은 이 달 말에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그러나 이 같은 빈번한 움직임들을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어쩐지 허전하고 공허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자신의 문제(한반도)를 놓고 미·소·중·일 등 주변 강대국들이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3자 회담」이라는 것도 요지경 속이다.
79년6월 「카터」미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한미양국은 공동성명(11항)을 통해 북한에 대해 남북한 및 미국의 고위당국대표가 참가하는 3부국회의를 제의한 적이 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명예로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그런지 5년도 안돼서 이번엔 엉뚱하게 북한이 우리가 제안한 3당국 회담과는 거리가 먼 3자 회담을 들고 나왔다.
이런 와중에 「레이건」의 4자 회담얘기가 나왔고, 일본지도자들은 은연중 일본을 포함하는 6자 회담의 애드벌룬을 띄우고있다.
중기지도자들이 한반도문제에 대해 한마디 하기만 하면 한국의 신문·TV들은 이를 요란하게 보도하곤 한다. 북한은 한국의 중·소접근을 결사적으로 방해하면서도 그토록 미워하던 미국과의 직접접촉을 비밀리에 시도하고있다.
여기서 사대주의의 만개를 본다.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정작 한반도의 주인인 남북한당사자들은 지금 서로간에 무슨 일을 하고있는가?
남북적십자회담·남북조절위회담·남북스포츠회담…. 어느 것 하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렸다. 모든 종류의 대화는 시작하자마자 단절돼버리곤 했다.
몇 년 전 미국무성 주선으로 10개국 기자들과 미국전역을 15일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일행 중엔 중공기자와 대만기자도 섞여 있었다. 그때 그들이 틈만 있으면 서로 정답게 얘기하고 깔깔대며 즐겁게 여행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서독인들의 친지방문을 오래 전에 허용한바있는 동독정부는 최근 주민들의 80%이상이 서독TV를 시청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서독TV가 잘 안 보이는 지역에 큼직한 중계안테나를 설치해주기로 했다. 서독TV를 못 보면 동독주민들이 오히려 불만에 찬 소요를 일으킬까봐 내린 정치적 배려이긴 하지만 애교가 있어 좋다.
그러나-. 남북한 사람들은 지금도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경계하고 심하면 욕설을 하고 등을 돌린다.
45년 해방직후 기쁨의 혼란 속에 한반도는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대국들이 책상 위에서 그어놓은 38선으로 분단되는 비극을 겪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해빙과 국제화시대를 맞아 한반도얘기가 또 주변강대국지도자들 사이에 논의가 빈번하다.
이해당사국들과의 선의의 협조는 문제를 푸는데 도용을 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문제를 강대국들에게 「부탁」하거나 「의기」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해결책이 나올리 없다.
중공지도자들이 한마디했다고 해서 우리가 흥분할 필요도 없고, 북한은 우리와 대화를 거부하면서 미국에 추파를 던질 필요도 없다.
남북한이 자신들의 문제를 오죽이나 서투르게 처리하려했으면 일본까지 한 다리 끼려고 들겠는가?
「레이건」과 등소평이 한반도문제에서 『이견이 있다는데 견해를 같이했다』 는 것은 코미디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은 우리민족자신의 염원이고 과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민족적 성업에 남들 (주변강대국)이 멋대로 손대기 전에 우리 자신들의 지혜를 모아보자. 분명히 길이 있을 것이다.
김건진

<외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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