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부졸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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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엄부자모는 우리의 전통적인 부모상이다. 가업이나 엄친이라는 말도 그런 표현의 하나다.
그러나 이 말은 부모가 『엄하다』는 표현이기보다는 부모를 이르는 자연스런 표현이다.
우리 속담에 『아비 만한 자식 없다』는 말이 있다. 옛날만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요즘은 시속도 바뀌어 약부졸모의 시대인 것 같다. 집안의 아버지는 나어린 자식의 목말이나 등말 노릇을 해야 하고, 어머니는 한낱 「성속」관리인 쫌으로 그 구실을 다하고있다.
목말이나 등말은 물론 자식에 대한 친근감과 애정의 표시이긴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상징보다는 아버지의 존재와 권위를 타고 누르는 잠재심리로 변질된 인상조차 준다. 귀여운 손자가 할아버지의 수염을 잡아 뽑는 격이다.
조선왕조 때 명상 황희 정승의 고사가 생각난다. 그의 아들도 역시 아비 만한 자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평소 아버지의 훈계를 귀뒷둥으로 흘리며, 주색에 빠져 남 보기가 부끄러웠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은 의관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집에 돌아오는 아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며 맞아들였다.
『아버님, 어이된 일이옵니까. 의관 속대하시고 저를 맞아주시오니…』
황희는 정중히 대답했다.
『아비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 내 집 사람일수 있느냐? 한 집 사람이 아닌 사람이 우리 집에 오니 주인이 인사를 차리지 않으면 어찌 예의라 이르겠느냐?』
엄부의 전통은 동양만이 아니다.『카르멘』이라는 소세로 유명한 프랑스작가 「메리메」의 단편 『부자』중엔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총을 쏘는 섬뜩한 장면이 있다. 인정과 의리와 약속을 저버린 버릇없는 아들을 그렇게 다스린 것이다.
이탈리아(주인공)사람 특유의 성격을 보여주는 작품 같지만 서양사람들도 엄부의 절도와 권위는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엄부자모를 낡은 시대의 낡은 덕목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옛날의 봉건적인 맹목과 절대의 권위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고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의 본분을 존중하자는 의미다.
5월8일은 어버이의 날이다. 이날의 교훈은 아이들에게 등말을 태워주는 것으로 다하기엔 부모의 역할과 의미가 너무 크다. 이날만이라도 엄부자모와 면모를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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