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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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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예언자 메이저 영감은 노래로 동물들을 선동한다. 독재자 인간을 추방하고 모든 동물이 평등을 이루자며 동물의 노래를 합창한다. 그중 하나가 흥겨운 멕시코 민요인 '라쿠카라차'다. 라쿠카라차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비참한 멕시코 원주민을 바퀴벌레에 비유해 만든 노래여서 동물농장과도 맥이 닿는다.

경쾌한 음률과 달리 이 노래는 아픈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 가사도 우리에게 알려진 ' … 빨래터의 아낙네도 우물가의 처녀도 /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이 아니다. 원곡은 "이제 다시 걸을 수 없네 / 더 이상 돈도 없어/ … 이미 카란사의 군대들은 떠났네 /판초 비야의 군대가 오고 있다네"라는 이른바 해방가요다. 억압받는 노동자들이 판초 비야의 혁명군을 기다리는 내용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멕시코 노래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베사메무초'다. "키스하고 또 키스해 주세요. 오늘밤이 마지막 밤인 것처럼 …." 멕시코의 전설적인 볼레로 그룹인 로스 판초스 트리오가 불렀다. 1960년대 현인에 의해 소개된 이 노래는 87년 6월 노태우씨가 전두환씨로부터 권력 승계를 받은 뒤 호텔 축하연에서 다시 불러 리바이벌됐다. 당시 청와대 파티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노래를 열창했다고 한다.

멕시코 음악이 모두 정열적인 것은 아니다. '돈데보이'는 독특한 정서와 애절함이 묻어나는 노래다. 멕시코계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티시 이노호사는 89년 스페인어로 된 이 노래 하나로 세계적인 포크송 가수가 됐다. " …태양이여, 이민국에 잡히지 않도록 내 모습을 감춰 주세요/ … 사막의 도망자처럼 난 혼자 걷고 있어요/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애잔한 멜로디에 소수민족의 슬픔을 담은 이 노래는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서울대공원이 요즘 토.일요일마다 멕시코 밴드팀을 초청해 식물원 음악회를 열고 있다. 추위로 발길이 뜸해진 공원 관람객을 잡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훈훈한 유리 온실과 흥겨운 선율이 한겨울의 이색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멕시코에는 요즘 한국 게임이 상륙해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고 한다. 국내에선 살사.볼레로 등 중남미 춤이 인기다. 이런 추세라면 두 나라 우호관계는 안 봐도 비디오다. 살을 에는 추위에, 오늘 멕시코 노래 한 곡 어떠신지요.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