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맛 보니 엄마 생각 나요" 해외입양 20여 명 서울서 '특별한 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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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 친구와 함께 고국을 방문한 영미(오른쪽), 독일에서 온 용수(왼쪽) 등 해외 입양인들이 10일 서울 청운동 뿌리의 집에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 김태성 기자

1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청운동 '뿌리의 집'에는 특별한 김장 담그기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미국.독일 등으로 입양됐다가 가족을 찾거나 고국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입양인들을 위해 마련됐다.

비릿한 젓갈 냄새와 톡 쏘는 마늘향에 몇몇 입양인은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지만, 김치 담그는 법을 설명하는 자원봉사자의 말에 이내 귀를 쫑긋 세운다. 무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는 모습은 서툴지만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이 묻어난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처럼 배추 잎 사이 사이에 양념을 듬뿍 넣는 크리스티안(20.덴마크), 김치를 다른 사람 입에 넣어주며 기뻐하는 희지(27.여.벨기에), 매워서 '후후'거리면서도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수잔(24.여.네덜란드)….

이들은 국적은 달랐지만 같은 피부색, 같은 눈동자의 '형제'들을 만나자 마치 가족을 다시 만난 것처럼 즐거워 했다. 미국에서 온 조너선(30)은 갓 만들어진 김치를 입에 넣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8세 때 한국을 떠난 조너선은 최근 형과 이모 등 가족들을 만났다. 그는 김치를 꼭꼭 씹으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조너선은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먹던 김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며 "김치를 먹을 때면 언제나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입양인들은 20여 명.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태어난 지 1년이 안 돼 입양된 탓에 한국의 음식과 문화는 생소하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한국에 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이상 머물면서 우리말과 역사.민요 등을 배운다.

국내 체류 입양인들을 위해 각종 지원사업을 펼치는 뿌리의 집에 따르면 한국에 머물면서 '고국 알기'에 나서는 입양인들은 현재 200여 명 정도다. 이들 사이에 소모임도 생겨 주말이면 다양한 한국 문화를 배우면서 서로 정을 나눈다. 한국인 입양인이라는 공감대 때문에 이들은 한국을 떠나서도 서로 e-메일 등을 주고 받는다.

대학 2학년 때 한국을 처음 찾은 뒤 현재 서울 충정로에 있는 '해외입양인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니콜(28.여.미국)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등 비슷한 경험 때문에 남다른 유대관계가 형성된다"며 "17일에는 국내에 머물고 있는 입양인 15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크리스마스 파티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뿌리의 집 김도현 원장은 "결국 부모를 만나지 못해 포기하거나, 한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실망만 안고 떠나는 입양인들도 적지 않다"며 "입양인으로 겪은 어려움만 부각하거나 친부모 찾는 것을 강조하는 등 지나친 한국적 사고는 금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양인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되 이미 다른 나라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성장한 그들의 삶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해용 기자<hysoh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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