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 가능한 여성 일자리가 출산율 높이고 소득 4만 달러로 가는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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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 12면

김춘식 기자

20대 남녀의 고용률은 70%대로 비슷하다. 하지만 30대가 되면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진다.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악착같이 일하던 여성 중 결국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국제적 통계도 한국 여성의 상황을 대변한다. 지난해 11월 세계경제포럼(WEF)은 ‘2014년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세계 142개국 중 117위였다. ‘경제활동 참가 및 기회’가 124위, ‘동일 직군 남성과의 임금 평등’이 125위로 특히 낮았다.

창립 32주년 여성정책연구원 이명선 원장

한국 사회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법적·제도적 성 평등을 이뤘다. 하지만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정부도 이런 현실을 고려해 일·가정 양립, 여성의 경력단절 완화 지원 등을 핵심 과제로 정했다. 마침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일 개원 32주년을 맞아 서울 불광동에 있는 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일·가정 양립, 행복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1983년 문을 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 정책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국무총리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지난 14일 이명선(58·사진) 원장을 만나 여성의 경력 유지, 일·가정 양립 등 최근 화두가 된 여성 정책에 대해 들었다.

-우리의 성 평등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80년대 후반부터 남녀고용평등법·성폭력특별법·가정폭력특별법 등을 만들고 호주제를 폐지하는 등 여성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해소해왔다. 법·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건 한계다. 세계경제포럼의 성 격차지수를 봐도 여성의 교육수준, 보건 부문에선 순위가 높았지만 사회 참여 부문은 개선 속도가 더디다.”

-우수한 여성은 늘었는데 고용률은 제자리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여성고용률은 53.5%다. 남성과 20%포인트 이상 차이 난다. 30대 여성의 낮은 고용률 때문이다. 알다시피 출산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그만두고 경력이 단절되면 복귀하지 못한다. 여성고용률은 국민소득을 좌우한다. 주요 선진국 사례를 보면 여성고용률이 높았을 때 국민소득도 늘었다. 1인당 국민소득(GDP) 3만 달러까지는 여성 고용과 큰 상관없이 성장할 수 있지만 4만 달러는 불가능하다. 여성과 함께 가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을 막고 경력 단절 여성이 재취업하도록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제도가 아니라 실행이 문제 아닌가.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 문화가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방해하는 게 사실이다. 오랜 시간 회사에 머무는 것을 직장에 대한 헌신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에서 여성이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는 쉽지 않다. 장시간 노동은 여성의 취업 의지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기업도 노동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일·가정 양립이 저출산 해법도 될 수 있을까.
“출산율은 여성 고용률과 비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경우를 보면 프랑스·스웨덴 등은 여성고용률과 합계출산율이 모두 높다. 우리는 둘 다 낮다. 한국 사회에선 자녀 양육에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외벌이 가정만으론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여성 고용을 늘려 가정의 기대 소득을 키우는 것이 출산율도 높여줄 것이다.”



이명선 이화여대 보건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9월 제14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에 취임했다.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 행정사회분과 민간위원,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안전행정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국가위기관리학회 2015년 차기 회장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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