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이 충청권에 미친 파장…"언젠가 이런 일 생길 줄 알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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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이 충청권에 몰고 온 풍랑은 거셌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어 정체가 모호한 제2,3의 리스트들까지 입 소문으로 떠돌면서 이 지역 정치인들을 숨죽이게 만들고 있다.

충청권 출신 정치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3가지로 나뉜다. 사람에 따라 성완종 스캔들에 연루되길 꺼리는 ‘회피’적 태도나 ‘동정’, ‘비난’으로 나타난다.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논산ㆍ계룡ㆍ금산)은 “세상엔 공짜가 없다. (권력이 없는) 나한테는 (돈을) 줄 일이 없다”며 성 전 회장으로부터 일체의 자금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죽기 직전 까지 전화 통화 몇 번만 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2012년 총선 때 성 전 회장과 선진통일당 소속으로 함께 당선됐고, 그 해 새누리당과의 합당 때도 함께 움직였다. 박병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대전 서구갑)은 “(성 전 회장이 결성한) 충청포럼에서 만나 알게 된 정도”라며 “두어 달 전 식사를 한번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정치인은 동정론을 폈다. 박수현 새정치연합 의원(공주)은 성 전 회장이 공주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출퇴근하는 박 의원을 보고 후원금을 보내준 사연을 밝히며 “충남에선 ‘정치적 타살’이란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성 전 회장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보은ㆍ옥천ㆍ영동에서 5선을 역임한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새정치연합 고문)은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처음부터 그를 경계했다”며 “가진 것도 없는 친구가 욕심을 부리면서 남의 돈을 제 돈처럼 썼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려 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반응은 다양했지만 여야를 막론한 충청권 정치인 대부분은 성 전 회장과 얽혀 있었다. 충청권 친목 모임들은 이들 간의 인맥 쌓기에 훌륭한 수단이었다. 충청포럼에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정운찬 전 총리, 박병석 전 국회 부의장, 정진석 전 국회 사무총장을 비롯, 새누리당 이인제ㆍ정우택ㆍ이명수ㆍ박성효ㆍ김동완ㆍ김태흠 의원, 새정치연합 김영환ㆍ전병헌ㆍ양승조ㆍ박완주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또 다른 충청권 인사 모임인 ‘백소회(百笑會)’에도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권 친목 모임이 활발한 데 대해 충청포럼 회원으로 익명을 요구한 모 국회의원은 “충청인들이 영ㆍ호남에 비해 중앙 무대에서 열세라는 생각이 있어 단결력이 강한 편”이라고 풀이했다.

충청도 현지에선 죽은 자에 대한 동정과 산 자에 대한 비난이 뒤섞여 있다. 이인제 의원은 “현역 정치인 중 내가 유일하게 성 전 회장 영결식에 참석했는데 그것 때문에 지역구에서 내 지지율이 올랐다”고 전했다. 박수현 의원은 “충청 총리(이완구)가 약하고 힘 없는 충청 기업을 제물로 삼았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했다.

이완구 총리 낙마를 두고 충청권의 위상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역신문의 K모기자는 “새누리당 내에서 이 총리 수사와 사퇴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고 차기 대선에서의 '충청권 대망론'에 PK(부산 경남)·TK(대구 경북) 세력이 제동을 걸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총리의 주도로 추진하던 신설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세종참여연대 등 충청권 시민사회단체는 16일부터 총리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수현 세종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진상 규명만이 충청인의 자존심을 함께 지켜줄 수 있는 부분”이라며 ‘충청도 총리’라는 지역 담론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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