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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가 공범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최근 우리 매스컴들이 연일 끔찍한 강력사건들을 요란하게 보도하고 있어서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경찰은 초비상사태에 돌입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범죄통계를 보면 이런 강력사건이 어제오늘에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생건수는 작년의 경우보다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검거건수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는 매스컴보도를 통해서 형성되고있는 우리사회의 「범죄적 사실」과 경찰의 통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범죄적 사실」사이의 이러한 상반성 속에서 현대사회가 안고있는 여러 가지 허구성의 한면을 잡아볼 수가 있다.
범죄통계는 통계를 작성하는 자들조차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범죄의 숫자와는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 매스컴은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인가? 「보도된 사실」은 때로는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부의 통계 이상으로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사회적 사실」에는 「칸트」가 말한 「물자체」란 없으며 이는 다만 여러종류의 주관적 인식들이 얽혀서 형성되는 것일뿐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대중사회에서는 적어도 범죄 현상에 관한 한 경찰의 통계보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사회적으로 인식된 사실을 창조하는데 더 큰위력을 발휘하고있다는 사실을 매스컴 자신이 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매스컴보도가 과장된것 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사회의 강력범 문제, 특히 70년대 이후부터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강도강간, 강도살인등 20대가 유흥비 마련을 위해서 범하는 소의 「돌변 치기」사건들은 우리사회가 앓고있는 여러가지 질병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악성 질병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러한 질병조차도 긍정적으로 볼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
질병은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병들고도 생각할 줄 모르는 자는 결국 그 법으로 죽고만다. 사람들은 천방지축으로 살아가다가도 병들어 눕게되면 자기능력의 한계를 알게되고,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며, 삶의 근본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그 성품이 선량해 진다고 한다. 범죄도 사회적인 질병인이상 이 고통을 계기로 해서 사회각층에서 엄숙한 반성이 있으면 이러한 문제가 오히려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허둥대면서 히스테리적 반응만 보이면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지기만 할뿐이다.
사회일각에서는 이런 종류의 범법자들은 공개처형을 해야된다는 의견까지도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여론형성은 그 자체가 범죄의 잔혹성 못지않게 매우 염려스러운 현상이다.
물이 새는 둑은 안쪽에서 막아야지 바깥쪽에서만 막으려고 하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당장 급하다고 허겁지겁 옆에서 뗏장을 떠다가 주먹을 덮으면 흘러나오는 물은 잠시 멈추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떼를 뗘낸 자리에서는 더 큰물이 쏟아져서 결국에는 둑 전체를 허물어 버릴수도있는 일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20대의 잔혹범들이 가지고있는 공통적인 특성은 이들이 따뜻한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범죄의 원인규명을 위해서는 이들의 성장과정에서 가정적인 사랑이 결핍된 이유를 밝혀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부모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또 이들의 이옷은 누구이며 이들의 삶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사회 구조적인 특성은 무엇인가? 이렇게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과 책임소재를 따져 들어가다 보면 결국 우리모두가 공범자들이라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된다.
이런 사회문제를 원인론적으로 따지다보면 결국 모든 책임은 「사회구조적 모순」에 있다는 구조환 원론적 오류에 빠지기가 쉽다. 「사회」란 실재하는 것일는지는 몰라도 사회 스스로가 모든 책임을 져주지는 않는다. 근래에 와서 모든 문제를 구조적 차원에서만 논하고 있는 경향, 그 자체가 개인들의 책임과 방심을 가볍게 보는 비도덕적인 가치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네가 하면 나도 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나부터,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바꾸어야 한다.
자신이 범하고 있을지도 모를 잘못부터 밝혀서 바로잡아 보겠다는 마음 자세야말로 현재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장 절실한 도덕률이며 이런 도덕적 자각의 필요는 각자가 구사하고있는 사회적 영향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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