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1994년(21)KBS-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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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88년 서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국제방송센터」를 건립하고 엄청난 물량의 새 장비를 도입해 올 때 나는 올림픽이 끝난 다음 이 시설과 장비들을 활용할 방안을 미리 세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그때만 해도 올림픽 후 엄청난 유휴시설과 장비가 생길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중반에 들어선 지금에 와보니 그때 주장들이 모두 쓸데 없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케이블 TV에 의한 채널의 다변화로 TV시설과 기재의 수요가 계속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이후 그 발전의 속도를 가속화한 전자통신기술운 이제 이 분야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옵티컬 파이버(optical fiber)에 의한 케이블TV의 개발로 TV채널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 채널의 유한성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들이 깨끗이 해결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1980년까지 KBS-TV는 VHF채널 2개에 UHF채널 하나를 가진 막강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작용해 왔다. 그러나 옵티컬파이버에 의해 케이블TV의 일반보편화로 기존 TV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채널은 VHF5개, UHF6개, 그리고 케이블TV 채널이 30개정도지만 케이블TV의 채널은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 같다. 케이블TV가 일으킨 가장큰 변화는 채널을 다변화함으로써 TV프로그램의 채널별 특성을 명백히 해 놓았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현 채널9는 교육·교양프로그램을 주로 방송하고 채널7은 뉴스와 스포츠를 주로 방송하고 있는데 비해 KBS소유의 케이블TV들이 드라머·쇼·코미디등의 으락프로그램을 나누어 방영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시청료도 받고 광고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영리사업까지 벌이고 있다는 비난의 소리를 KBS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 왔지만 광고를 모두 케이블TV쪽으로 쫓아 버려 이젠 그런 비난을 들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한 때 KBS-TV는 4개의 TV채널중 3개를 한손에 거머쥐고 나는 새도 당장 떨어뜨리 는 위용을 과시 한적이 있다. 스포츠진흥을 위해 정책종목을 계속 며칠 혹은 몇달만 중계하면 그것이 곧 국기가 되었고 건국40년동안 여러정권이 손도대지 못한 「이산가족찾기운동」을 벌여 온 누리를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또 4천만의 선량이 모인 국회나 정부의 부서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프로그램 하나로 거뜬히 해결하기도 했다. 지금 KBS부설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추척60분』이 그 전형적인 예다.
며칠전 나는 10년전에 KBS의 운영에 참여한 간부 한분을 만났다. 그는 TV방송이 케이블TV로 인해 빛을 잃어버린 오늘의 현상을 매우 개탄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기술을 휘어잡지 못하면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순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케이블TV가 그렇듯 서슬이 퍼렇던 KBS-TV를. 지금과 같이 무기력한 채널로 퇴화시켰다고 하지만 앞으로 적어도 10년이 더 지나야 케이블TV의 공과를 평가할 수 있다고…』
이상회(연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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