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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나침반] 언제나 그 자리에 '행복한' 송해·김동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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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방송인은 누구일까. 이런 엉뚱한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연을 넓혀 '행복한 방송인 열 명'을 꼽으라면 나는 우선 두 사람을 명단에 포함시키고 싶다.

코미디언 송해와 아나운서 김동건. 송씨 가문의 송승헌이나 송혜교의 인기가 얼마나 갈지 확신하기 어렵고 같은 이름의 장동건과 이동건을 앞으로 얼마나 더 방송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송해와 김동건, 이 두 사람은 참 오래도록 TV 안에 남았고 또 긴 시간 시청자의 가슴 한편에 남아있을 것 같다.

방송에도 명당자리가 있고 방송인 중에도 명품이 있다.

일요일 낮 이웃한 채널들이 영화예고편(MBC '출발 비디오여행', SBS '접속 무비월드')을 요란하게 틀어대도 '전국노래자랑'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월요일 밤 이웃(SBS)에선 여인('여인천하')과 야인('야인시대')이 번갈아 등.퇴장을 해도 '가요무대'는 흔들림 없이 손님을 맞았다.

확실히 두 프로에는 노래를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와 숫자(시청률)를 무시할 만한 존재의 이유가 숨쉬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뭘까.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가요무대'에서는 살아온 '추억'을 만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마치 나무그늘과도 같은 두 개의 넉넉한 그림자가 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송해는 자신을 '일요일의 남자'라고 소개한다. 일요일의 남자가 송해라면 월요일의 남자는 김동건이다. 이틀 전(5. 25) 방송된 '전국노래자랑' 전남 장흥군편이 1천1백72회였고 어제(5. 26) '가요무대'(작곡가 백영호 별세 추모특집)는 8백29회였다.

방송가의 한탕주의, 혹은 속전속결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두 사람은 여전히 그 시간이 되면 같은 자세, 같은 표정으로 같은 무대에 나타난다. 참 한결같다.

인사말에 해외동포와 해외근로자를 매주 언급하는 점도 닮았다. 하기야 해외의 한국비디오상점에 가장 오랜 기간 걸려 있는 스테디셀러가 바로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이다. 가요사뿐 아니라 풍속사를 연구하는 학자에겐 이미 충분한 사료적 가치를 획득한 프로들이다.

송해의 이미지는 이름 그대로 해불양수(海不讓水)다. 바다가 물을 가리지 않듯이 그는 출연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십대 처녀가 오빠라고 불러도, 칠십대 노파가 영감이라고 불러도 다 받아들여 준다. 김동건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를 넘어가는 법이 없다.

웃어도 파안(破顔)을 보인 적이 드물고 음속(音速)은 모데라토를 견지한다. 어젯밤 방송된 KBS '가요무대'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로 문을 열었다. 그녀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안겨준 그 노래는 바로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작곡가 백영호 선생의 대표작이다. 사회를 보는 아나운서 김동건이야말로 노랫말처럼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수더분하게 지켜온 동백아저씨 같았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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