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꿨다…한인 시니어들의 힘

미주중앙

입력

서툰 영어·힘든 몸 이끌고
정부 기관 신고해도 허사

3선 나선 시의원에 알려
관리소측의 변혁 끌어내

한인 시니어들의 집념은 강했다.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우다 결국 끝장을 봤다.

LA다운타운의 밴나이스 노인아파트에 사는 시니어들은 2013년부터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한인들에 따르면 관리사무소 측이 아파트 시설 관리에 소홀했고, 이를 항의하자 심한 욕설을 듣는 등 정신적인 피해를 당했다. 본지 2013년 12월 28일 A-1면 참조>

한인 시니어들은 관리사무소에 강력히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관리사무소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언론사에 제보하고 회사를 망신 줬다며 해당 노인들을 차별 대우했다. 아파트 시설 보수를 요구해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직원에게 손가락 욕설을 들었다는 최모(83) 할머니는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도 무시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투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인 시니어들은 서투른 영어 솜씨를 갖고서도 LA시 정부기관 담당자들을 수 차례 찾아가 직접 신고했다. 한두 곳이 아닌 다섯 곳의 정부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시니어들은 2014년 초부터 한인 주민회를 결성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찾아간 곳은 LA경찰국. 신고 내용은 "손가락 욕설을 들었다" "집 수리를 요구했더니 집에 찾아와 대화 중 몸을 밀쳤다" "관리실이 이틀 동안 전기 공급을 끊어 몸에 무리가 왔다" 등 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며 현장을 둘러보기만 했다. 이후 노인들이 찾아간 LA시장실, 노인국, 주택국, 소비자보호국 등에서도 이들의 신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할머니는 "화도 나고 오기도 생기더라. 그때 중국 주민이 창 밖에서 들어온 유독 가스에 피해를 당했다. 그래도 관리사무소는 방치했고, 이 일을 계기로 한.중.일 커뮤니티가 힘을 합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계 시민단체인 CCED도 힘을 보탰다.

결정적인 한 방은 최 할머니가 날렸다. 연합주민회가 결성된 지난 2월, 최 할머니는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던 호세 후이자 시의원 선거캠프와 우연히 통화를 했다. 최 할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다.

"관할 구역 노인들 상황을 아느냐. 아무리 시정부에 찾아가도 얘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는데, 이를 방치하는 시의원은 안 뽑겠다. 시의원 3선을 반대한다."

3선을 노리던 후이자 시의원 측은 당황했다. 아시안 유권자들의 표가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후이자 시의원은 즉각 시정부 담당자 2명을 파견하고, 관리사무소와 주민회의 미팅을 주선했다. 담당자들은 아파트 실태 조사를 벌였다. 아파트 관리업체 앰코는 시의원이 직접 나서자 자체 조사를 통해 욕설 의혹을 받던 직원을 지난달 해고했다. 또 주민들에게 민원 해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시의원 측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소 측이 모두 잘못했다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나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시니어들의 모습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 아시안 시니어들의 얘기에 더 귀 기울이고, 실태 파악에 더 힘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10일 오후, 아파트에서는 한중일 주민과 히스패닉계 주민이 모인 주민회 모임이 열렸다. 주민회는 세입자의 권리를 알고 지키기, 좋은 환경 만드는 데 동참하기 등을 약속했다.

최 할머니는 "영어를 못하고 나이 들었다고 주눅이 들 필요 없다. 우리도 뭉치면 할 수 있다. 여전히 관리사무실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우리의 열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 시니어들이 멋진 승리를 일구어 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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