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팔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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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자의 「이웃 인(린)」자는 획도 많고 쓰기도 복잡하다. 그러나 뜻을 풀어보면 따뜻한 의미를 담고 있다.
마을(읍)에서 쌀을 주고 받으며 서로 오가고 한다는 뜻이다.
영어의 「네이버」도 비슷하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맞추어 네이버라고 했다. 우리말의 「이웃」 역시 그런 뜻에서 비롯되었다.
가깝다는 말은 물론 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옛날, 인적이 드물던 시적의 가까운거리란 요즘처럼 오밀조밀 추녀를 맞대고 사는 가까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산너머, 혹은 강건너 한 채씩 떨어져 사는 이웃이다. 땅 덩어리가 넓은 중국이나 서양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정작 그런 시절의 이웃들은 사촌보다도 형제보다도 가까웠던가 보다. 「이웃 사촌」이니,「먼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들이 남아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이런 얘기도 있다. 『세닢 주고 집 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 「세닢」이땅이라면 「천냥」은 하늘쯤 된다. 이웃을 그만큼 귀하게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웃이 무턱대고 좋기만한 것은 아니다. 『이웃집 꽃은 더 붉다』는 일본 속담엔시샘이 있고, 『이웃은 바보일 수록 좋다』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심사도 곱지는 않다. 『심사는 좋아도 이웃집 불붙는 것 좋아한다』는 말은 우리 속담이다.
지금은 집과 집사이가 가깝다 못해 벽을 사이에 하고 있는 아파트나 연립주택 시대다. 같은 대문(?), 같은 계단을 쓰는 것은 물론이다.
바로 그런 이웃이 정리로는 천리도 넘는다. 누가 사는지, 이름이 뭔지, 어떤 뜻을 가진 사람들인지 캄캄하다.
이웃 아파트의 노인이 죽은 것을 우편집배원이 발견했다는 얘기가 이젠 미국이나 서독의일만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나라 아파트촌에서도 그와 똑 같은 일이 있었다.
옛날과는 거꾸로 가는 세상인가. 잔등을 맞대고 사는 이웃인데도 빗장은 천근 만근 「이웃 팔촌」이상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집합주택 소유·관리에 관한 법률」까지 궁리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나쁜 이웃은 밀어낼 수도 있는 법이다.
비밀요정, 댄스교습, 내연의 처, 범죄아지트등을 생각하면 그럼직도하다. 게다가 「공동생활」이라는 새로운 주문화에 익숙지못한 우리의 생활풍습까지 곁들여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옛 법언에 『좋은 율사는 나쁜 이웃』(Bon avocat, mauvais voisin)이라는 말이 있다. 율사와 이웃이 되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원래 이웃간엔 법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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