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선행조건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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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대통령은 나의 거듭된 진언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다울링」대사를 만나 당신의 입장을 재천명 하도록 지시했다.
「다울링」대사는 7월10일 하오 나를 만나 우리 입장을 다시 듣고는 『한국정부의 부정적 반응에 매우 슬픈 느낌』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한국정부가 미국측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실제로 북송자는 1만명도 넘지 않을 것이고 한국 귀국자는 15만∼20만명이 될 것이지만, 한국측이 계속 기존방침을 고수한다면 역현상이 생길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는 전자의 경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얻는 외교적 성공과 위신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안타깝게 말하고 『만일 한국이 그에 동의한다면 미국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쓸수 있는 특별원조기금의 일부를 제공할 용의도 있다』고 제의했다.
한국귀화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에 대해 미국이 처음으로 그 의사를 밝힌 것이다. 「맥아더」주일대사도 15일 유태하 주일대사에게 미국은 일본정부에 보상금 지금을「합리적으로」하도록 최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우리측의 신축성 있는 자세를 거듭 촉구했다.
미국의 이같은 제의는 「맥아더」대사의 말에서도 나오듯이 미국이 이 시점에서 일본의 북송계획을 철회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정세 분석결과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대통령은 13일 「다울링」대사와 나를 청와대로 불러 『미국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 일본을 훈계할 책임이 있다』는 지론으로 미국측을 설득하려는 무익한 노력을 했다.
이대통령은 『일본이 재일 한국인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면 우리는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이대통령의 이같은 말에 일순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는데는 나중에 자세히 밝힐 터이지만, 많은 난점이 있고 또 재외 자국민 보호라는 관점에도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울링」대사는 『한국정부가 그렇게 한다면 일본측도 어느정도 재정적 보상을 할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정부는 한번도 보상금액수를 명시해서 말한 적이 없다』고 저적했다.
그는 따라서 보상금 지급은 개인별로 해서는 안될 것이며 일괄타결의 형식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정부가 이 문제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검토했음을 시사했다.
「다울링」대사는 『이와 관련해 미국정부는 일본정부에 보상금을 지급토록 압력을 가할 것이며 한국정부도 재일 한국인의 본국정착에 필요한 경비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제의했다.
그는 또 『귀국동포들의 정착금 산정에는 정착에 필요한 주택과 농장등을 제공하는 일정금액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며 『이와 관련해 미국정부는 이같은 목적에 사용될 원조기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무조건 한일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지적, 한국정부가 이에 동의한다면 『미국은 전폭적으로 한국을 지지할 것이며 한일 양국간의 중재를 할 태세가 되어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우리의 중재요청에 대해 선행조건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대통령은 일본의 보상금 지급 조건으로 재일 한국인의 귀국을 허용하겠다고 말하고 나에게 「다울링」대사의 제의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14일 이대통령에게 낸 검토보고서를 통해 미국측 제안은 △일본측 체면을 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일회담 재개를 통해 국적승인 여부의 결정을 지연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자금으로 재일 한국인의 일본외 추방기도를 돕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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