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때문도 아니고 절박한 사면도 없어…|너무 쉽게 버려지는 아이들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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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김포공항출국로비의 입구에 A아동복지회의 마이크로버스가 와 선다.
위탁모의 품에 안긴 3명의갓난아기와 9, 6, 5세의 여아가 함께 내린다. 갓난아기를 안고있는 위탁모의 눈이 울어서 부어있다.
멀리 미국으로, 유럽으로 잉부모를 찾아 떠나는 고아들을 몇달이나마 맡아 키워준 기른정이 짧은 이별을 맞을때마다 이들을 울게한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으로 뿔뿔이 헤어져갈 갓난아기들의 표정은 여기에 아랑곳없고 어지간히 큰 영선·영주자매와 혼자 유럽으로 떠나는 선애의 얼굴에는 표정이없다. 『양부모님들을 만나러 가는데 즐겁지 않느냐』는 질문에 9세된 영선의 이마가 찌푸려진다.
1년반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자 어머니는 곧 그들을 A아동복지회에 양육을 의뢰했기 때문에 영선·영주자매의 생부모에 대한 이별이 아직 너무 생생하기 때문인지모른다.
55년 미 오리건주 농부였던고 「해리 홀트」씨가 6·25직후의 참담함 속에서 버림받은 혼혈고아 8명을 미국에 입양시키는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국외입양 사업은 이제 연5천명선을 입양시키는 규모로 자라났다. 지난 30년가까이 김포공항을거쳐 나간 고아의 숫자가 이제 10만여명 가까이 헤아리게되었으며 여기에 얽힌 사연또한 시대에따라 그양상을 달리해이성다. 『10년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5백달러 정도였습니다. 이젠 1천8백달러를 넘어서고 있어요. 가난때문에 아기의 양육을 포기한다는 말이 과연 호소력이 있느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때가 아니겠읍니까』
홀트아동복지회에서 18년동안 입양관계일을 맡아온 이지숙씨(국내입양부장)의 말이다.
요즘의 부모들은 아기를 너무쉽게 포기하며 그사연 또한 절박한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성희씨 (동방아동복지회 국내임양부장)도 최근엔 기아보다 친권포기쪽을 더 많이 접수하고 있는데 이 역시 자녀에게 책임을 지지않으려는 풍조를 엿보게 해준다고했다.
접수되는 아기가운데 70%이상이 미혼모의 양육포기다. 최근엔 이혼한 부부가 자녀양육을 서로 미루다 친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며칠전 혼자 유럽으로 떠난 선애의 경우가 바로 부모들이 양육을 서로 기피하여 일어난 입양케이스.
기아의 경우에도 지난날에는 아기의 가슴속에 쪽지 한장정도는 들어있었는데 요즘은 그쪽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사연이나 생년월일을 적어넣은 쪽지는 적어도 아기를 버리는 부모마음 한구석에 얼마간의 따뜻함이 남아있음을 감지케 해준다. 그런데 요즘처럼 쪽지마저 없는 아기를 접수하게되면 부모의 냉랭한 가슴을 느끼게된다는 이성희씨의 말.
기아가운데는 불구아가 많다. 정신박약아·지체부자유아·언청이등.
친권이 포기된 아기나 부모를 전혀 찾을수 없는 기아가 입양의 대상이되는데 국내입양의 경우 언청이나 기타 불구아의 입양은 거의 불가능하다.
국내입양은 지난해 3천40명으로 해마다 몇천명의 아기가 국내에서 새부모를 맞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기를 고르는 조건이 무척 까다롭다. 건강하고 인물이 잘 생겼으며 가능하면 부모의 출신성분까지 알수있는한 알아서 참고하려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에서 국내입양에 선발(?)되지 못한어린이들이 해외의 양부모를 찾게되는데 외국의 경우 일부러 불구아를 찾는 부모들이 적지않다. 불구이거나 건장치 못한아기를 데려가 이들을 치료해주고 불구를 고쳐서 키워보겠다는 뜻에서다.
며칠전 2세된 여아 1명도 언청이를 찾는 부모를 찾아 유럽으로 떠났다.
일시보호소에서 성남이란 이름이 붙은 이 어린이는 곧 양부모의 주선으로 수술을 받게된다.
한국의 입양아를 받아들이는 미국의 경우 사후대책은 오히려 국내보다 더 완벽하다.
얼마전 일시 귀국한 심현숙씨(미미네소타주CHSM상담원·전한국기독교양자회장)는 미국에 입양된 한국인 자녀와 양부모의 상담을 맡고있는데 미국 양부모들의 사랑이 지극하여 눈물겨울때가 있다고 전해준다.
해외입양에도 문제는 많다. 전혀 다른눈빛과 피부색으로하여 사춘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입양아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다른 민족에 비해 한국인이 적응력이강해 미국의 양부모들은 한국어린이를 환영한다.
한국에서 친권을 포기하는 부모들은 흔히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건다. 이처럼 좋은환경과 조건속에 자녀를 보낸다면 오히려 생부모들이 키우는것 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남의 나라 좋은환경이 자라는 자녀에게 좋은영향을 주고 그들을 행복하게해주는 것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산업화과정에서 잃어져 가고있는 인간성. 우리는 우리의 아기들을 가난때문이 아닌 가슴으로 버리는 것이 아닌지. 이제 마음의 여유와 정신의 풍요에 관심을 가져야 할때가 된것 같다. <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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