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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시비(天道是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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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기원전 99년.

한(漢)의 장수 이릉(李陵)은 오천의 병력으로 흉노의 팔만 대군과 맞선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싸움에 패하고 사로잡힌다. 격노한 무제(武帝)는 이릉의 처자를 죽이려 한다. 뭇 대신이 이릉의 투항을 욕할 때 사마천(司馬遷)이 홀로 변호에 나선다. "적은 숫자에 굴하지 않고 싸운 이릉의 기개가 가상하지 않은가. 오히려 구원군을 보내지 않은 이광리(李廣利)를 벌해야 한다." 이광리는 무제가 총애하던 후궁의 오라버니. 괘씸죄를 산 사마천은 '궁형(宮刑.거세)'을 받는다. '이릉의 화(禍)'다.

사마천은 그 참담함을 '사기(史記)'를 저술하며 이겨낸다. 그러나 울분마저 삭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사기' 내 열전(列傳)의 첫 번째 이야기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다룬다. 옳은 주장을 펼치다 참혹한 벌을 받은 자신의 처지를 백이숙제의 형편에 비유해 호소한다.

사마천은 말한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은 굶어 죽었다. 공자는 일흔 명의 제자 중 안연(顔淵)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안연은 항상 가난해 술지게미나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했다. 또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베푼다고 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사마천은 분노로 포효한다. "춘추시대 말기 도적인 도척(盜)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회 쳐 먹었다. 온갖 잔인한 짓을 다하며 돌아다녔지만 하늘이 내려준 목숨을 다 누리고 죽었다. 도대체 하늘의 도리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耶非耶)."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은 망언 전문가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희망했다" "(일본이 어려울 때) 다행히 한국에서 전쟁이 나 덕을 봤다" 등 한둘이 아니다. 외상 취임 후 한동안 잠잠하는가 했는데 최근 또다시 망언을 시작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문제삼는 건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뿐" "신경 쓸 것 없다" 등 상식 이하다. 아소의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징용된 한국인 1만 여명의 힘으로 아소 광업을 키웠다. 아소의 외할아버지는 한국인을 "뱃속의 벌레"라고 말한 인물이다. 망언과 망동이 집안 내력인 셈인데 일본에선 잘나가는 듯싶다.

과연 천도(天道)는 시(是)인가, 비(非)인가.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