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직장에 가짜 혼인, 가짜 전세 … 서민 대출 160억 가로챈 281명 기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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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서민전세자금을 대출받아 가로챈 혐의로 300여 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은행의 대출심사와 대출금 회수 제도가 허술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최성환)는 서모(51)씨 등 123명을 사기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이들과 공모해 대출 명의를 빌려준 가짜 임차인 한모(47)씨 등 15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서씨 등은 2011년 5월부터 5년간 220여 차례에 걸쳐 160억여원의 전세자금을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민전세자금대출은 시중은행에서 무주택 근로자나 서민에게 전세보증금의 70~80%를 저리로 빌려주는 제도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주택신용보증기금을 재원으로 대출금의 90%를 보증한다. 검찰은 서씨 등이 대출금을 갚지 않더라도 기금에서 90%까지 보전하기 때문에 대출심사를 형식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가짜 임차인·임대인을 모집해 전세계약서를 허위로 만든 뒤 대출을 받아 대출금을 나눠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과정에서 4대 보험에 가입된 직장 근로자로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유령회사를 차리고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 재직증명서 등 허위 서류를 작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브로커의 소개로 모르는 여성과 허위로 혼인신고를 해 신혼부부 대출을 받거나 내연관계의 남녀가 임차인과 임대인 역할을 맡아 서류를 조작하기도 했다.

 서씨는 검찰 조사에서 “가로챈 대출금은 도박자금 등 유흥비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출 사기단의 범행으로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세제·예산 지원 정책이 왜곡됐고 국민 혈세가 낭비됐다”며 “지난해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대신 갚아준 전세자금대출이 2068억원에 이르는 만큼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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