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화평법 손질 안 하면 통상마찰 빌미 줄 수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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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국내에서 올 1월부터 시행 중인 ‘화학물질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기술 분야의 대표적 무역장벽으로 규정했다. USTR은 지난 2일 공개한 ‘2015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화평법이 ‘민감한 기업정보를 유출시킬 수 있다”며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USTR이 미국의 수출에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를 지적하는 것으로 매년 발간된다.

 국내 기업들은 그간 화평법을 대표적인 ‘과잉 규제’로 꼽아 왔다. 화평법은 기업들이 취급하는 모든 화학물질과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판매하는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 의무적으로 보고·등록하고 심사·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애초 유해물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법이지만 기업들은 등록비가 물질당 수백만~수억원이 드는 데다 기업 기술·기밀 정보까지 공개해야 하는 등 부담과 부작용이 크다며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USTR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통상 마찰이 생길 우려도 커졌다.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듀폰·다우케미컬 등이 화평법에 따라 피해를 봤다고 판단되면 미국 정부가 문제를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화평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왔다. 2011년 우리 정부가 법 제정 움직임을 보이자 무역 장벽으로 규정할 수 있다며 경고했고 2013·2014년 무역장벽 보고서에도 우려를 표명했다. 게다가 올해 보고서에는 “한국 환경부가 하위 규정을 만들면서 업계의 의견 수렴 기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며 이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장 미국이 화평법을 걸고 넘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국내외 화학·제약 업체들은 한목소리로 화평법을 ‘반 시장 규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제를 첩첩이 쌓아놓고 무슨 기업 경쟁력을 말하고 규제 완화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미국 정부와의 통상 마찰 여부를 떠나 이런 과잉 규제를 계속 끌고 가야 하는지 정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