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서울을 싱크탱크의 메카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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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세계적으로 싱크탱크(think tank)는 정책 토론의 핵심 공간으로 부상했다. 전문가, 정부와 민간 부문의 대표, 시민이 사회·경제 현안을 토론하는 무대가 싱크탱크다. 워싱턴에 있는 브루킹스·헤리티지 재단은 정책 토론의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최근 서울에서도 아산정책연구원, 동아시아연구원, 외국인이 설립한 싱크탱크 등 크고 작은 싱크탱크들이 부각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인프라, 제조업 노하우, 전자정부 등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울의 싱크탱크 클러스터가 거버넌스 혁신의 센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한국의 세계적인 비즈니스·교육 역할을 고려하면 확실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비전을 실현하려면 몇 가지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첫째, 젊은이를 포용해야 한다. 싱크탱크 행사에 가보면 40세 이하 참가자가 없다. 발표자는 많은 경우 60~70대다. 행사에서 볼 수 있는 젊은이는 인턴이다. 토론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니즈(needs)를 간과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또한 한국의 싱크탱크는 국제적·세계적이어야 한다. 영어로 세미나를 진행한다고 글로벌화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팀에는 외국인, 여성, ‘다문화 코리아’의 대표들이 포함돼야 한다. 해외 싱크탱크처럼 외국인을 선임연구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베트남·몽골 사람을 부모로 둔 연구원을 채용한 한국의 싱크탱크가 내가 알기로는 아직 없다.

 차세대 싱크탱크는 기후변화 같은 핵심 과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그리고 두려운 생각이 들 정도로 정직한 발언이 오가야 한다. 기술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역할도 중요한 토픽이다. 우리가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기술은 사회를 분화시키고 있다. 사회 문제에 집중할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싱크탱크의 역할은 보통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심각한 문제들에 우리가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진부한 이야기를 청중에게 늘어놓는 것은 싱크탱크를 실패로 이끈다.

 또한 한국의 싱크탱크는 여러 언어를 포괄해야 한다. 영어 외에 중국어·일본어·아랍어 보고서도 가끔 발행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는 인도네시아어·베트남어 문헌도 발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싱크탱크 보고서와 정책 제안을 효과적으로 채택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서울이 세계 싱크탱크의 중심이 되려면 혁신 능력이 핵심이다. 모방에는 한계가 있다. 국내외 연구와 토론을 통합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기후변화나 ‘사이버 공간의 미래’ 같은 지극히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해 세계 각국의 새로운 정책을 조율하고 거대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서다.

 소형·대형 싱크탱크 간의 협력도 증진해야 한다. 대형 싱크탱크는 예산이 많고 세계적인 전문가들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 소형 싱크탱크는 유연성이 좋으며 보통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더 잘 알고 있다. 한국이 이런 싱크탱크들 간에 재원과 지식을 공유하는 전략을 개발한다면 혁신적인 싱크탱크 생태계가 탄생할 수 있다.

 불행히도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는 서울의 진보적 싱크탱크는 국제사회를 매료시킬 주장을 내놓는 데 실패하고 있다. 외국어로 된 문헌을 많이 생산하고 있지 않다. 파트너 관계인 해외 싱크탱크도 별로 없다. 반면 보수적인 싱크탱크는 국제금융이나 안보 문제처럼 보통사람들의 필요와 동떨어진 토픽에 머물고 있다. 청년층 일자리, 환경파괴,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싱크탱크의 모방보다는 한국의 지적 전통에 바탕을 둔 고유의 관점과 논리를 강조할 때 한국 싱크탱크의 세계성·효과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한국의 최대 강점은 제국주의적인 지배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한국은 균형 있고 호혜성 있는 국제관계를 표방한다. 그래서 다른 선진국 싱크탱크보다 더 개방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은 조선시대부터 견제와 균형,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훌륭한 거버넌스 전통을 유지해 왔다. 이는 세계적인 함의가 있는 정책 혁신의 바탕이다. 최근의 제조업분야 성공보다는 14~18세기에 한국이 이룩한 제도 혁신을 부각시켜야 보다 깊이 있는 한국형 접근법을 개발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다.

 한국에는 집현전이라는 위대한 싱크탱크 유산이 있다. 집현전은 엄청난 자유와 독립성을 유지한 정책 토론의 중심이었다. 장기적이며 도덕적인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연구 성과들을 쏟아냈다. 유교 전통을 중시했지만 정책 연구에 대한 접근법은 지극히 실용주의적이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형평성 있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세종대왕의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20세기 이전에 전 세계적으로 이런 훌륭한 싱크탱크는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차세대 한국의 싱크탱크들도 이런 집현전을 참고한다면 세계적 싱크탱크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