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두 번 꽃필 것도 같은 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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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문자(1943~) '두 번 꽃필 것도 같은 내일'부분

산에 다녀온 날은
머리를 감아도 감아도 풀냄새가 났다.
실핏줄까지 새파란 풀의 정신이
내 몸 온 데를 건드렸나 보다.
소래포구로 생선 사러 갔다 온 날은
두 손을 비누로 닦아도 닦아도 비린내가 났다.
어쩌지 못하는 것들은 냄새의 혼이 있다.
냄새 속에서 지난날의 피가 흐른다.
기억을 잠글수록 비린내는 더 진동한다.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 자라면서 상흔도 점점 커진 사람이 있다. 화장으로 지우고 다녀봐도 그것을 모른 체하고 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 치명적인 사랑도 있다. 그는 '기억을 잠글수록' 더욱 차고 넘치는 '비린내'를 어쩌지 못해 '푸른 신경으로 온몸에 불 켜고' 나날을 산다. '불발의 그리움'으로 하루를 채우는 사람들이여, 그대 몸 안에서 핏빛 꽃이 터지는 걸 보았나?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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