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전환대출,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에 혼선…'제 2금융권' 대출자 형평성 논란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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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에도 각 은행의 안심전환대출 창구는 분주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근무시간이 끝났는데도 대기자 순번이 100번을 넘어서는 바람에 ‘내일 대기표를 갖고 오면 먼저 봐드리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고객들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까지 누적 승인액은 6조7430억원. 전날 4조9000억원이 나간 것에 비하면 속도가 다소 늦춰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에 각종 혼선도 불거지고 있다. 20조원으로 예정된 한도가 조기에 소진될 수 있다는 전망에 대출자들의 조바심이 커지고 있어서다. 제2금융권 대출자들을 중심으로 ‘형평성’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대책마련에 나섰다. 25일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높은 수요가 이어진다면 관계기관과 한도 증액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판매 상황이 관건이지만 증액 폭은 20조원 이내로 총 40조원 안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올 경제운영방향을 통해 밝힌 전환 대상 규모가 40조원이었다. 그러나 한도를 확대하면 정부는 물론 한국은행, 은행권의 부담도 따라서 커진다. 우선 정부와 한은은 은행이 판 안심전환대출 채권을 받아줄 주택금융공사의 자본력을 키워줘야 한다. 은행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으로선 상대적 고금리인 기존 대출을 포기하고 저금리의 정책상품으로 바꿔주고 있는 셈”이라면서 “대출 건당 1%포인트 수익률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안심전환대출로 은행권이 입을 손실을 1400억~1600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은행주 주가는 안심전환대출의 판매 속도와 비례해 떨어지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많은 국민은행은 이틀 내리 2%대 하락세를 보였다.

정부가 더욱 곤혹스러워하는 건 제2금융 대출자들의 불만이다. 빌라를 담보로 상호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박모(55)씨는 이날 은행 창구를 찾았다가 대출자격이 없다는 설명에 “우리보다 저금리인데다 여유가 있는 은행 대출자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와 관련해 한편에선 정부의 가계부채 구조개선의 타깃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사시 문제의 근원은 제2금융권 이하 고금리 대출 이용자들인데 정작 이들이 소외되면서 대출의 질을 끌어올린다는 명분도 약해졌다.

제2금융권 확대 문제에 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좀더 지켜보겠다”며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무진들은 난색이다. 안심전환대출은 기본적으로 이자만 갚는 대출을 원금을 함께 갚는 대출로 갈아타게 하기 위해 낮은 금리를 ‘당근’으로 주는 상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전 시장조사 결과 제2금융권 대출자 중 원리금을 갚아나갈 여력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기에 가격이 안정적인 아파트가 담보인 은행권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제2금융권의 대출은 주로 빌라나 연립주택이 담보인 경우가 많다. 안심전환대출을 받기 위해 담보가치를 제대로 따져보면 대출이 가능한 액수가 오히려 줄어 기존 대출을 일부 갚아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란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나마 은행권 대출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게 보험회사의 주택담보대출”이라면서“제2금융권으로 확대를 한다면 우선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1월 기준 은행권 담보대출의 규모는 367조1000억원, 상호금융과 보험회사를 포함한 제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은 120조원 가량이다.

조민근·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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