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경제 용어] 자금 세탁(Money Launderin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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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비자금과 꼭 붙어다니는 나쁜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자금 세탁입니다. 비자금 같이 불법으로 만든 ‘더러운’ 돈을 합법적인 깨끗한 돈인 것처럼 보이게 세탁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머니 론더링(Money Laundering)’이라고 합니다. 직역해도 돈 세탁, 한글 용어와 똑같은 말로 풀이됩니다. 자금 세탁이란 말이 미국에서 생겨나서죠.

 1920년대 미국에선 알 카포네란 악명 높은 두목이 이끄는 범죄 조직이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마피아라고 하지요. 이들은 무기 판매, 밀수, 마약 거래 같이 불법적으로 번 돈을 자기 조직이 운영하는 세탁소를 통해 세탁합니다. 세탁기에 돈을 돌려 빨았다는 의미가 아니랍니다. 불법 자금을 세탁소 영업을 통해 합법적으로 벌어들인 돈인 것처럼 위장했단 뜻입니다. 보통 빨랫감을 맡기고 세탁비로 현금을 내는 사람이 많았죠. 정확히 얼마나 많은 손님이, 빨랫감이 세탁소에 몰렸는지 따져보기가 어렵다는 특징을 알 카포네는 악용했죠.

 현재 자금 세탁은 법을 어기고 몰래 만든 돈을 합법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모든 행태를 아우르는 말로 쓰입니다. 조직폭력 범죄는 물론 뇌물, 불법 정치자금, 보이스피싱 사기 등 광범위한 부분에서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한국에서 자금 세탁이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건 90년대입니다. 93년 8월 12일 정부는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경제 명령’이라는 복잡하고 긴 이름의 법을 깜짝 발표합니다. 현재는 ‘금융실명제’란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기 이름(실명)으로 금융 거래를 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93년 8월 12일 전엔 그렇지 않았답니다. 진짜 이름이 ‘홍길동’인데 은행에 가서 ‘고길동’이란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고 저금을 해도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금융실명제가 깜짝 시행되면서 여기저기 숨어서 돌고 있던 비자금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자금 세탁이 성행했고 이를 잡아내기 위해 법망이 촘촘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금융감독원 권민수 자금세탁방지1팀장은 “자금 세탁은 조직폭력, 기업 비자금에서 국제 테러단체 불법 자금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고 온라인을 활용하는 등 수법도 고도화되고 있다. 그에 따라 국제 공조 체계와 적발 기술도 강화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한국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국으로 지난해 선출돼 오는 7월부터 의장국으로 활약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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