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우리문화 알린 '아리 코리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그들이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겠다며 짐을 꾸리고 한국을 떠날 때 "참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쉽게 실망하고 좌절한다는 섣부른 판단으로 '몇달 안에 돌아오겠지'라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자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본지에 장대한 세계 여행 계획을 털어 놓았던 세계 문화 탐험대가 일년 하고도 한달 20일 만에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지난 19일 밤 뉴욕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린 이들은 여행으로 다소 지친 기색이었지만 눈빛은 더없이 성숙하고 당차 보였습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깨달음

안녕하세요. 1년 만에 다시 인사드립니다. 우리는 세계 문화 탐험대, 아니 이젠 어엿한 '아리 코리아'팀입니다. 중앙대 연극학과 학생들인 김형준(27).배재훈(25).김재화(24).박선영(23) 등 이렇게 네명이 1년간 지구 한 바퀴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무사히'라고만 하기엔 우여곡절이 참 많았군요. 지난해 4월 1일 인천항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탈 때만 해도 저희들의 꿈은 원대했습니다. 하지만 육로로 베트남.인도.네팔 등을 거쳐 유럽에 도착했을 때 저희는 몸도 아프고 돈도 다 떨어지고, 한마디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여행 4개월 만에 처음 5명의 멤버 중 세 명이 중도포기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날아온 두 명의 멤버가 우리에게 또 다시 힘을 실어줬거든요.

우리는 단순히 배낭 여행을 한 게 아닙니다. 우리 짐 속엔 한복과 장구.꽹과리.징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남미.북미 대륙의 25개국을 차례로 답사하며 방문한 도시에서 전통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마당놀이 '사마장자'와 사물놀이를 선보였습니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매일 저녁 그 나라의 공연을 보고 감상문을 적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습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의 여행이 어디 순탄했겠습니까. 무전여행에 가까운 생활, 낯선 한국 문화를 심드렁하게 쳐다보는 외국인들의 시선은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마당놀이 '사마장자'의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토론하면서, 없는 돈에 숙소를 어디로 정할까 얘기하면서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여행의 반을 남겨둔 시점에서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어느덧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생겨난 겁니다. 그 후로는요? 호흡도 척척 맞고 가는 곳마다 일이 술술 풀리더군요.

#세계여 우리를 주목하라

대륙마다 우리는 칙사 대접을 받기도 하고 집시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당시 한.일 월드컵의 여파 때문인지 따가운 질시의 눈길이 많았습니다. 잘 지내던 이탈리아 친구는 우리가 '꼬레(한국인)'라는 걸 알고는 말 한마디 안 하더군요. 심지어 저희를 증오한다며 욕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꽹과리 소리가 시끄럽다고. 당국의 허가를 받았는데도 경찰서에 잡혀간 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다양한 문화의 수혜를 받은 유럽인들이 우리의 퍼포먼스에 다소 심드렁한 반면 아프리카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타악문화에 익숙한 그들은 우리의 리듬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튀니지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공연을 벌일 때 인근 마을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몰려와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즐긴 게 무척 기억에 남습니다. 열정적인 남미인들의 뜨거운 반응도 잊을 수가 없군요. 한국의 타악기 연주 기술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학구파들 때문에 귀찮을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낭만적인 여행을 상상했었습니다. 인적이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해질녘 사물놀이 난장을 벌이면 얼마나 멋질까요. 하지만 낭만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길거리 바닥에 철퍼덕 앉아 우리 사물놀이를 연주할 때의 그 흥분과 자부심은 직접 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세계 문화 탐험은 계속된다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제2,3의 '아리 코리아'팀이 우리 문화를 각국에 널리 전파하길 기대합니다. 그간의 문화 탐험을 중계한 홈페이지(www.goworldgo.net)를 통해 앞으로 더욱 많은 정보와 노하우를 공개할 생각입니다. 대원들이 여행 중 쓴 일기를 모아 책도 낼 계획입니다.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보다 더 의미있는 일을 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