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저작권과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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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저작권을 포함한 외국의 지적 소유권을 적극 보호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최근 공개되었다.
그런 방침은 정당한 것이고 또 새삼스런 일도 아니라서 길게 논의할 여지도 없다.
다만 이번 정부의 방침표명은 한미경제협의회에서 미국 측이 그것을 요구하고 나온 문제이고 또 그에 대해 올 상반기 중 우리정부의 적극적 방안제시가 있으리란 발표로 해서 다른 때보다는 상황이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이미 우리정부가 표명해왔고 또 이번에도 밝히고 있듯이 국제저작권 협약에 가입해서 누구의 저작권이든 간에 이를 보호한다는 원칙자체는 준수되어 마땅하다. 그래야만 「해적판 천국」이란 국제적 오명을 불식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떳떳한 입장이 확인될 뿐 아니라 선진화와 개방사회를 외쳐온 국가목표에도 합치한다.
하지만 그런 명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방침이 너무 성급하게 추진되어서는 곤란한 현실적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본다.
우선 우리가 만국저작권협약 ( 일명 베른조약) 이나 국제저작권협약(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 에 가입할 경우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해야하는 문제다.
출판의 경우에 한정해 보더라도 외국의 저작권이 보호될 경우에 우리는 적어도 연50억원의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 출판계의 경영실태에 비추어 적지 않은 부담이다. 막대한 외화소비를 줄이고 지적욕구 충족에 대처하지 않을수 없었던 개발도상국의 처지론 결코 무시할수 없는 액수다.
그 점을 생각하면 우리 정부는 국제저작권 보호협약에 참여하기에 앞서 당연히 신중한 연구와 대처 노력이 있어야 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국내의 영세하고 취약한 출판업계를 보호하고 이를 육성하는 정책들이 선행되어야겠다.
지금 당장 부실경영에 허덕이는 우리 출판계의 현실을 타개할 뿐 아니라 외국저작권 인정 후에 나타날 지적교류의 역조로 인한 파다한 경비지출에도 견딜수 있는 뿌리를 유지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둘째는 외국의 예에 비추어 국가이익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면밀히 따져야겠다.
저작권협약에 가입하는 문제는 우리의 국가이익에 직접 연관되는 일인만큼 우방의 선의의 압력일지라도 이를 용납하기 어렵다.
문화적 지배는 경제적 지배의 측면 못지 않게 개도국의 입장을 압박하는 것이어서 국가이익에 대한 배려 없이 섣부르게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다.
더우기 우리에게 그런 요구를 하고 있는 문화대국들조차 그들의 국익을 고려해 가입을 천연했던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문화공세에 대항하던 미국자신도 54년에 세계 저작권협약에 가입했으며 일본은 74년에 비로소 베른조약에 가입했다.
미국이나 일본과 우리 나라는 경제발전 단계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얘기는 새삼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다.
또 미국이 요구하는 협약내용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히 검토해 대처해야겠다.
지금으로서는 미국이 영국간 협약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지지만 그럴 경우 기타 나라들과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또 저작권 보호문제가 다른 지적소유권 보호문제와 결부되어 함께한 미 경제협의회에서 논의되는 것은 회피되어야겠다. 그 자리엔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우리측 관계자는 물론 출판계를 대표하는 사람도 참가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저작권은 분리해 논의될 일이다.
미국이 한국상품 수입에 적용하고 있는 일반특혜 관세제도(GSP)와 결부해서 우리에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은 배제하는 것이 두 나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또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의 하나지만 외국 특히 미국의 출판사들이 일본출판사를 대리권 자로 선정, 우리 나라와 거래하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불평등, 불공정은 물론 우리 나라 자존심에도 위배되는 일이다. 일본의 중간개입은 그들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것이며 우리에 대한문화적 예우도 아니다.
국제저작권협약의 가입문제는 이처럼 사전에 상당한 기간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일본이 8년의 연구기간을 설정했고, 소련이 10년을 유보하며 기반을 다졌던 점도 상기해야겠다. 정부는 당연히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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