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사 수리공, '디지털'을 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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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에 자리한 ㈜오토닉스의 박환기(52.사진) 사장은 우리나라 자동화기기 분야의 개척자로 꼽힌다.

그는 1984년 당시 외제 일색이던 자동화기기 시장에 뛰어 들어 국내 처음으로 '디지털 카운터'를 개발했다. 디지털 카운터란 숫자를 전자적으로 세는 기계다. 제조 기계를 자동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달아야 할 장치다.

오토닉스는 공장 자동화에 사용되는 각종 센서와 제어기기 등 약 4000종의 자동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주차장.자동문.엘리베이터 등에도 오토닉스의 제품이 들어간다.

박 사장은 매년 매출의 10%씩 떼어 내 연구개발 투자를 한다. 또 본사가 경기도 양산이지만 우수인력을 유치하기 부천 테크노파크에 중앙연구소를 세웠다. 연구인력은 65명으로 전직원의 15% 규모다.

박 사장은 경남공전 전자과를 졸업한 뒤 부산 국제시장 안에 있는 전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국제시장은 동네 전파사에서 수리가 불가능한 것들이 모여드는 곳이어서 전자기술을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던 그는 국제시장 일대에서 금방 소문난 기술자로 인정 받았다.

전파사 수리공으로 5년여 일한 후 박 사장은 "가전제품 수리는 이젠 재미가 없어 못하겠다"며 산업용 기계에 눈을 돌렸다. 77년 '국제전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독립했다. 부산은 항구도시이다 보니 발전기와 집어등 등 선박과 관련한 전기.전자장치 수리 주문이 많았다.

수리업에서 제조업으로 방향을 튼 것은 창업 3년째인 1979년. 자동선반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선반 제어기를 국산화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박 사장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자동선반은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했다"며 "일본 제품을 분해해 가며 3개월을 보낸 끝에 선반제어기를 개발해 납품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 사장은 선반 제어기 개발을 계기로 자동화기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진전될 수록 자동화기기는 필수제품이 될 것이라고 박 사장은 판단했다.

그는 "디지털 카운터 개발에 회사역량을 쏟아 한때 부도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결국 카운터 국산화에 성공했다"며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자동화기기 산업에 씨를 뿌린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토닉스의 지난해 매출은 495억원이다. 세계 100여 국가에 제품을 수출해 100억원 넘게 벌어 들인다.

부천=최준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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