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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와 선동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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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히틀러와 그 일당은 누구보다 군중을 잘 다뤘다. 그들은 군중을 다룰 때 중요한 것은 감정적 일체감이라는 사실을 재빨리 포착했다. 가슴으로 믿기 시작하면 군중의 머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군중은 분리될 수 없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기사는 틀렸다. 히틀러가 지도자이지, 선동가가 아니라는 대목에서다. 히틀러는 철저한 선동가였다. 그는 20년 동안 똑같은 북을 두드려 댔다. 국민을 자신이 조종하는 폭도로 만들고, 그가 악마의 이미지를 덧씌운 유대인을 증오하도록 만들었다.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은 전혀 달랐다. 간디와 킹도 군중과 감정적 일체감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들은 추종자들에게 도덕으로 무장하도록 요구했다. 보다 숭고한 가치를 위해 자기방어 본능조차 포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비폭력으로 폭력에 저항하게 했다. "문제는 우리가 극단주의자가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극단주의자가 되느냐다. 증오의 극단주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극단주의자가 될 것인가. 불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극단주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정의라는 큰 뜻을 위한 극단주의자가 될 것인가."(킹 목사의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 간디와 킹은 사람들에게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거짓말에 속더라도 거짓으로 상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이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받는 이유다.

선동가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다. 군중을 끌어내리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군중의 감정을 어떤 표적에 집중시키고 감정적인 정의를 외치는 함성이 들끓게 한다. 그러기 위해 히틀러가 유대인을 지목한 것처럼 누군가를 악마로 만들곤 한다.

지도자와 선동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로버트 멘셜이 '시장의 유혹, 광기의 덫'에서 제시한 구별법이 유용하다. 그들의 주장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를 세우자는 것인지, 부수자는 것인지. 광야를 개척하자고 말하는지, 광야에서 누군가를 쫓아내자고 주장하는지. 그들의 주장이 내 마음속의 천사를 깨우는지, 더 나쁜 쪽을 눈뜨게 하는지. 한 가지 덧붙이면 지도자는 열정을 일깨우지만, 선동가는 광기를 불러온다.

주위를 둘러보자. 각종 선동이 난무한다. 인터넷 세상에서 활약하는 익명의 선동가도 많다. 그로 인한 광기가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입장이 다른 사람을 불구대천(不俱戴天)으로 몰아가는 일도 적지 않다. 엊그제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서 국민 다수가 '혁신과 과거사 정리'보다 '균형과 안정'을 더 중요하다고 답한 것도 이 같은 광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리라.

내년 지방선거,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동가인지, 지도자인지 잘 살펴보자. 그들의 주장이 내 마음속의 좋은 면을 일깨우는지, 나쁜 쪽을 자극하는지 따져 보는 게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는 정치인뿐 아니라 민주노총.전교조 등 각종 파워그룹을 이끄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해야 할 기준이다.

이세정 정책사회부 차장